[연재] 아시아의 지식인

존재를 초월하는 ‘미(美)’의 위치 새롭게 정립
동·서양, 인간·사물의 탈경계를 지향하는 자유분방한 사유와 도전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미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도쿄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국제미학회 명예회장과 철학미학비교연구국제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학문의 사명이 ‘새로운 명제의 제시’, 즉 창조적 정신의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존재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며 여기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창조적 탐구를 시도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학문적 관심은 철학, 미학, 윤리학, 시학, 음악 미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으며 일본미학사상과 공자·장자의 사상과 같은 동양고전의 해석에도 탁월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우리는 그의 학문적 업적을 △탈존재론적 미의 형이상학 △동·서 비교철학 △에코에티카(Eco-ethica)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의 미학사상은 1956년에 공표한 ‘칼로놀로지아(Calonologia)’ 안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말은 그리스어의 미(kalon), 존재(on), 이성(nous), 학문(logos) 네 개의 단어를 결합해 축약한 것이다. 따라서 칼로놀로지아는 ‘미(美)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밝히는 학문’이다. 그런데 미는 단순한 존재를 초월한 빛 내지 광휘로 생각되므로 존재의 가장 높은 상위에 kalon이란 말을 붙였다. 그에게 미는 최고의 가치이념이다. 그래서 존재를 초월하는 미의 가치에 이성적으로 도달하려는 학문이라는 의미를 밝혔다. 이러한 방향성에 입각할 때 칼로놀로지아는 ‘존재를 초월하는 가치로서의 미를 고찰하는 형이상학’이 된다. 따라서 미학은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인 철학을 포섭·통합한다. 이처럼 이마미치는 미학을 도달해야 할 최고의 정점으로 삼는 존재론적 철학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독일어로 간행된 그의 최초의 저서 『일자(das Eine)에 관한 고찰』과 『동일성의 자기소성(自己塑性)』은 이러한 그의 특유의 존재론을 다룬 저작이다.

이마미치는 『동양의 미학』에서 동·서양의 예술의 개념에 ‘역(逆) 현상의 동시적 전개’라는 패러독스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서양은 A로부터 B로 전개되지만 동양은 B로부터 A라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서양의 고전적 예술 개념은 ‘*미메시스’, 즉 외부세계를 모사하는 ‘재현’이지만, 현대에 이르러 사진과 같은 기계기술이 재현을 대체하면서 기술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내면세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동양은 이러한 경로와 달리 길을 거꾸로 걸어왔다는 것이다. 동양의 고전적 예술 개념은 ‘사의(寫意)’라는 말로 압축되듯이 작가의 내면세계를 중시하는 표현 사상이며,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재현을 중시하게 됐다. 동양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백의 의미와 형태의 상징성은 바로 이러한 작가의 내면적 정신성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한편 재현의 관념은 동양의 경우 뒤늦게 근대에 이르러 나타났다.

그는 『동서의 철학』에서 동·서 문화의 기반이 되는 사유구조를 예술뿐만 아니라, 언어, 논리, 종교, 윤리, 인식의 각 분야에 걸쳐 비교한다. 자신이 말하는 동·서사상의 양립성(兩立性)과 반립성(反立性)을 논증하고 그 상호보완성을 주장하면서, 종래의 동양과 서양을 별도로 생각하는 국지주의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인류주의 철학으로 향한다. 예컨대 서양의 ‘페르소나’(persona, 개체적 인격)의 개인성과 동양의 ‘인’(仁, 두 사람)의 관계성 비교 등, 기본어로 돌아가 동·서 사상의 심층에 깔린 차이를 풍부한 예증을 들어 밝히면서도 나아가 그 통합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강조한다.

또 그는 ‘에코에티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의 발전과 계몽에 앞장섰다. 근래 주목받는 소위 ‘환경윤리학’의 선구자인 셈이다. 그는 인간이 과학기술에 의해 자연을 넘어서서 만든 *기술연관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인간 내부에 침투하면서, 고도의 기술사회가 윤리를 경시하는 위험을 지적한다. 윤리학의 대상이 대인(對人) 윤리로부터 대물(對物) 윤리로, 또 개인의 윤리로부터 조직과 단체의 윤리로까지 확장되기 때문에, 넓은 시야를 갖춘 새로운 윤리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에코에티카란 현대의 기술연관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인간이 직면하는 문제를 포함해 삶의 방식을 새롭게 생각하는 학문이며 생명윤리, 의학윤리, 정치윤리, 환경윤리, 기술윤리 등의 범위를 포함한다.

그의 창조적 학문은 동서양 고전에 대한 엄밀한 텍스트 연구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젊은 시절 파리 대학, 뷔르츠부르크 대학 등지의 강사생활 이후 서구 학자들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교류 속에서 형성된, 동·서양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색의 산물이다. 그의 학문적 활동은 곧 “존재 그 자체를 향해 초월적 지향을 갖는, 무(無)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동양사상을 소개하거나 그 현대적 의의를 천명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동·서양을 고루 지양해 새로운 시대를 펼치는 철학을 구축하고 있다.

미메시스(mimesis) : 흔히 ‘모방’으로 번역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대상을 재현하고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능력’으로 해석되기도 함

기술연관(technical cohesion) : 여러 기술들이 함께 모여 결합하면서 새로운 조직체계를 구성하는 현대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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