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아시아의 지식인 - 뚜웨이밍

역사 속에 사장된 채 ‘골동품’ 대접받았던
유가전통의 창의적 재도전

김태성 박사
한성문화연구소 대표

우리에게 유가는 종교철학인가, 정치사상인가? 전통 예교에 불과한가, 세계화 시대의 현실적·실천적 사유 체계인가? 유가는 이 모든 것인 동시에 어떤 것도 아니다. 유가는 거대한 사유의 집합체이면서 자잘한 조각의 더미다. 이처럼 모호하게 해체된 유가의 전통에 대해 UCLA 교수 조셉 레빈슨(Joseph R. Levenson)은 『유교 중국과 그 현대적 운명』에서 “유가사상은 그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필요로 하던 사회가 와해하면서 이미 어두운 그림자가 돼 일부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남아 골동품처럼 사랑을 받고 있다”고 유가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이러한 유가의 절망적 위상에 맞서 평생 유가 연구에 천착한 뚜웨이밍은 유가의 새로운 현대적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타이완 둥하이대 재학시절 보수 학자들의 영향으로 유가 인문정신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주력하던 뚜웨이밍은 하버드대로 학문의 환경을 옮기면서 중국과 세계 사상사를 두루 아우르는 비교사상사적 관점을 지녔다. 그러면서 다른 사유 체계에 대한 유가전통 핵심 가치의 비교 우위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그 후 30여 년 동안 그는 유가의 새로운 위상 정립을 위한 창의적 사유에 몰두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사상적 역정을 유가의 정신적 가치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비판적인 자아의식과 정체성 확립에 주력했던 1970년대와 유가전통의 내재적 경험을 찾아내고 유가의 현대적 생명력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던 1978년부터 1980년대 말,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이런 사상적 성숙 또는 변천의 과정에서 그는 ‘전통과 현대’, ‘유가의 창의적 변신’, ‘동아시아의 핵심가치’ 등 중요한 담론들을 시도한 데 이어 논역을 보다 확대해 ‘문명 간의 대화’와 ‘문화 중국’, ‘세계화의 윤리’, ‘인문정신’, ‘계몽에 대한 반성적 사유’ 등 보다 거시적인 주제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이는 한(漢)대 동중서에 의해 국가이데올로기로 부상한 이래 장기간 중국 전통사회를 이끌어 온 정치이데올로기로서의 유가 또는 ‘정권화된 유가’에서 탈피해 인간을 최상위의 가치로 인정하는 유가의 본질적인 인문주의 요소를 극대화함으로써 과거의 유물로 박제화되고 있는 유가의 현대적 부활을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문화환경이 다원화되고 세계화와 본토화가 동시에 진행돼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유가가 어떻게 바람직한 이론과 실천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그의 가장 큰 학문적 주제이다. 물론 이러한 논역은 ‘유가의 창의적 방향전환’을 실현하지 못하면 유가의 ‘현대적 운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과 오랜 성숙과정을 거쳐 온 유가가 이 모든 담론을 위한 충분한 자양을 갖추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유가가 현실과 역사에서 괴리된 관념의 파편으로 해체되고 희화화되는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뚜웨이밍의 학문적 노력이 얼마나 현실적인 실천윤리로 전환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의 초점일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다분히 도식적인 ‘문명충돌론’에 공감했다면 우리는 ‘문명 간의 대화’라는 개념으로 이를 극복한 뚜웨이밍의 비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세계 문화발전의 주류로 받아들일 수 없는 단편적인 사유의 결과로서 냉전 이후 미국 사회의 일부 건강하지 못한 정치적 심리의 반영이라는 혐의를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문명이 내부적 충돌을 안는 동시에 다른 문명들과의 공통점을 갖추는 만큼, 문명들 사이의 광범위한 대화가 충분한 가능성과 당위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는 뚜웨이밍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사상계도 유가사상에 대한 고전적 해석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문화환경과 새로운 학문적 패러다임에 접속해 우리의 뿌리이기도 한 유가전통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시도하고 이를 일종의 소프트파워로 전환하는 창의성이 필요한 때다. 힘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지식은 공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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