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소설가 편혜영

 

사진: 신동호 기자  clavis21@snu.kr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쥐를 한 번에 때려잡을 때는 생소한 쾌감에 젖었다. 그는 햇볕에 농익은 석류가 속을 내벌리듯 쥐가 더러운 회색 가죽 바깥으로 붉은 내장을 툭 터뜨리는 걸 똑똑히 바라보았고 피와 엉겨 붙은 털이 바닥에 얼룩으로 남고 누군가 지나가면서 밟는 것을 지켜보았다.  
                                                                                                                                  - 『재와 빨강』중  

 


작가의 작업실 근처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소설가 편혜영을 만났다. 그의 작품이 풍기는 섬뜩한 분위기와 대조적인 환한 미소와 고운 첫인상이 의외였다. “천진난만한 꼬마 애들이 개미 따위를 죽이는 걸 보면 섬뜩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소설과 제 이미지가 많이 다른 것을 사람들이 재밌어 해요. 하지만 전 어렸을 때부터 평범했어요. 술도 잘 못 마시고 담배도 안 펴요.”

그로테스크하면서 섬뜩한 분위기의 독특한 작품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그이지만 ‘작가 편혜영’과 ‘작가라는 꼬리표를 뗀 편혜영’은 확연히 다르다. 소설을 쓸 때 그는 평소보다 훨씬 더 비관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등 그의 소설에서는 공포영화 같은 끔찍한 장면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이런 장면을 쓰면서 스스로도 끔찍하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그가 소설을 끌고나가는 힘이란다. 편혜영다운 의외의 대답이다. “제가 천착해온 ‘극단적 어두움’의 세계에는 밝고 평온한 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긴장감이 있어요. 그런 긴장감이 제 소설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무섭고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파편처럼 흩어져있던 이전 단편소설과 달리 그가 처음 세상에 내놓은 장편 『재와 빨강』에서는 그러한 장면들을 연결 짓는 서사가 더욱 촘촘해졌다. 주인공의 비참하고도 무서운 상황을 계속 악화하는 장치가 곳곳에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재와 빨강』을 이끄는 일관된 서사 장치는 ‘쥐’다. 쥐 때문에 파견근무를 가게 된 남자는 전염병이 도는 타국에 고립되지만 방역업체에서 쥐를 잡으며 본인 역시 쉽게 소탕되지 않는 쥐처럼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쓰레기더미에서 닥치는 대로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사내는 쥐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존재로 전락하며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잊어버린다. 그래서 『재와 빨강』은 한 사내의 생존의 기록인 동시에 몰락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처럼 주인공의 몰락기를 그리는 편혜영만의 극단적 세계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을 이어주는 치밀한 서사로 완성된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서 소설 전체를 견인하면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장면은 무엇일까. 편혜영은 ‘원숭이 숲’ 장면을 꼽는다. 주인공은 아내와 화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원숭이 숲 사원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야생의 원숭이들은 사원의 방문객을 허락하지 않고 악마처럼 그에게 달려든다. 주인공은 급기야 내재된 폭력성을 주체하지 못해 원숭이 꼬리를 깨물어 잘라버리고 나뭇가지로 찍어 죽이고 만다.

편혜영은 성공의 욕망을 가진 자의 처절한 ‘실패담’이라는 아이러니에 끌린다고 한다. 원숭이 숲 장면은 바로 욕망을 가진 자가 욕망을 이루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장면이다. 아내를 위해 더 잘 해보려는 욕망이 치욕으로 바뀌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너무 불쌍하다는 독자의 반응에 “제가 더 불쌍해요”라는 농담으로 웃어넘겼다는 그. “비참한 상황에 놓인 인물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그가 하는 행동과 처한 상황의 아이러니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제 소설은 현실과 30cm정도 떨어져 있어요.” 작가 스스로 말했듯이 그의 소설은 현실과 한 발짝만큼 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가 작품을 쓸 때 가장 영향을 받는 텍스트는 ‘현실’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 대부분은 사육장을 빠져나온 난폭한 개에게 물리는 등 지극히 비일상적인 충격과 공포 속에 휘말린다. 그러나 이는 르포 프로그램에서의 늑대 야산 탈출 현장이나 2005년 어린이대공원에서의 퍼레이드 중 코끼리들이 뛰쳐나온 사건 등 현실 속 실제사건을 작품 속에 변주한 결과물이다. “어린이대공원 코끼리 사건처럼 정말 비일상적인 일들이 잠시 견고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올 때의 충격이 인상적이었어요.” 두 번째 단편집 『사육장 쪽으로』에 ‘동물의 왕국’처럼 유독 동물들이 많이 등장했던 이유다.

이처럼 그의 소설 속 극단적 세계에 존재하는 욕망의 아이러니는 일상의 균열을 ‘증폭’시킨 것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일상이 뒤흔들리는 폭격과 같은 충격을 독자에게 전한다. 그가 가장 선호하는 균열의 소재는 지진이다. 대지라는 견고한 기반이 뒤흔들리며 세계와 일상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의 행동에서도 욕망의 아이러니를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실제 지진으로 죽기보다는 지진으로 인한 미세한 흔들림 때문에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는대요.” 살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다. 한편 그는 지난 칠레 지진으로 수도권이 서쪽으로 4cm 이동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작품을 구상 중이다. “그 지진 때문에 입은 직접적 피해보다는 거대한 대륙이 4cm 이동했다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작은 균열감이 톡톡 드러나는 순간이 좋아요.”

단단해 보이지만 톡톡 튀는 미세한 균열처럼 편혜영의 작품세계는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두 단편집으로 쌓은 명성 때문에 이번 장편을 탈고하는데 부담은 없었냐고 묻자 “‘편혜영표 소설만의 개성이 있다’고 많이들 하시는데 이제 겨우 책 두 권을 내고 몇 걸음 내디뎠을 뿐이다”며 손 사래를 친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얘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날카롭고 섬뜩했던 어법은 작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 한다. “칼끝을 들고 소설을 써왔는데 저도 나이를 먹었는지 요새는 ‘날이 무뎌진’ 칼끝을 들고 쓰는 것 같아요.”

칼끝을 든 듯한 긴장감으로 소설을 쓰는 편혜영 작가. 그의 소설 속 섬뜩함과 그로테스크함에는 칼날 같은 긴장과 함께 일상에서 증폭시킨 욕망의 아이러니가 있다. 그는 4월 1일 상수동 ‘이리 카페’에서 있을 독자와의 만남에서 원숭이 숲 장면을 낭독할 예정이라고 한다. 편혜영 작가가 직접 읽는 ‘원숭이 숲’장면. 벌써부터 으스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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