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빼앗긴 대지의 꿈

전쟁과 평화, 이 모순된 조합은 출범한 지 1년 된 오바마 행정부의 현실이다.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당시 많은 이들은 미국 외교 전략 변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노벨 평화상을 받고도 전쟁을 놓지 않았고 이에 『워싱턴 포스트』는 ‘오바마의 약점은 인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에 이르렀다.  『빼앗긴 대지의 꿈』은 이 역설적 상황이 미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며 서구 제국주의와 약소국의 불평등에 주목한다.

저명한 기아문제 연구자인 저자 장 지글러는 학계에서는 사회학자로, 기아 현장에서는 유엔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분주히 활동해왔다. 그가 지금까지 펴낸 책에는 기아문제 기저에 도사린 훼손된 인간성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기아문제를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분석했다면  『탐욕의 시대』는 기아문제의 주범인 서구 ‘제국’과 다국적 기업의 추한 이면을 드러냈다. 이번 책은 초점을 서구 국가에서 기아문제의 본거지인 남반구로 돌려 인권문제 전반까지 집중조명했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운 강대국들이 약소국에 여전히 반인권적 폭력을 자행하는 모순을 제국주의 사고방식의 잔재와 연결짓는다. 미국이 일부 석유생산국의 인권유린을 묵인하면서 전략적 동맹관계를 유지하듯 다른 강대국들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반구 국가들의 인권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서구가 약소국을 상대로 저지른 학살과 약탈에 대해 “이미 대가를 치른 과오”라며 책임을 회피한 바 있다.

책은 서구의 어두운 ‘원죄’를 양심과 이성의 빛 앞으로 끌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1장부터 3장이 ‘죄’의 역사와 계보,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심리를 분석하고 4, 5장은 죄에서 비롯된 남반구의 충격적 실태에 주목한다. 특히 「나이지리아, 멈추지 않는 증오」에서 저자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이 야기한 문제들이 집약된 나이지리아의 현실인 선거 부패, 아동 성매매, 이권 침탈을 르포 형식으로 폭로한다.

그러나 장 지글러의 인식은 비관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유린이 공존하는 모순된 세상 안에는, 착취의 주체인 인간이 희망의 주체도 될 수 있다는 ‘긍정적’ 모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긍정적 모순은 현재 인간 해방이라는 역사의 필연적 흐름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볼리비아에서는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빈민지원·노예제 타파 등의 개혁을 이끌고 있다.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은 유럽에서 시작됐지만 오늘날 그 빛은 탐욕과 위선에 가로막혀 있다. 그러나 볼리비아를 비롯해 남반구에서 태동하는 주권 국가들에서 새로운 혁명의 빛이 보인다. 2008년과 2009년 각각 프랑스 인권저작상과 케어 인터내셔널 밀레니엄 상을 받은 이 책은 남반구 국가들의 눈물과 투쟁에서 새로운 빛을 찾아낸 한 편의 대서사시다.  


빼앗긴 대지의 꿈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312쪽┃1만2천8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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