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범위 불명확하고 형벌 과다한 군 형법 및 지휘관 관할 사법 판결
상명하복의 군 질서는 군 인권 문제를 드러낼 수 없어 속으로 곪아갈 뿐
대한민국의 어느 성인 남성도 군 문제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국가는 그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고 그들은 2년의 시간을 희생한다. 하지만 군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병역 그 자체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복무 하는 동안 ‘왜 내가 기본권 침해를 감수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국가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기본권 희생을 강요받는다.
한 해 25만명의 예비입영자는 개인의 정체성, 살아온 환경, 특성 등에 대한 고려 없이 간단한 신체 및 정신 검사만을 거치고 입대가 결정된다. 군인 개인의 개성은 군대에서 드러낼 수 없다. 군대가 규격화한 군인은 무엇이든 군대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 안보라는 논리 앞에 군인 개개인의 기본권이 무조건 희생돼야 하는가? 『대학신문』은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인권 유린 상황을 짚어보고 그것이 어떻게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지, 개선될 여지가 있는지를 짚어봤다.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 형법 92조, 군인의 양심의 자유 제한 등의 사건을 통해 군인 인권 위기 상황이 드러났지만 해결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다. 국방부는 효율적인 국방 운영을 위해 군인의 기본권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군대에서 불거진 일련의 인권 침해 사건은 국방부가 국가 안보와 관련이 없는 사안까지도 군인의 특수한 신분을 강조해 논란이 됐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군대 내 동성애자의 존재나 개인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는 국가 안보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라며 “몇십 년이 지났지만 군대의 권력계층은 아직도 군사정권 시절처럼 군인의 기본권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승환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도 “군대는 평화 시에는 행정조직의 성격을 갖고 있다”며 “전쟁 시에는 빠른 명령 전달과 그에 따른 절대적 복종이 필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평화 시에는 기본권을 제한하면서까지 인권을 억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 군사법제도는 군형법, 군사법원법 등을 비롯해 기타 법률, 명령, 규칙들로 이뤄져 있다. 우선 군형법은 처벌 범위가 불명확하고 형량도 일반 형법과 비교했을 때 과다해 죄형법정주의와 평등권 위반의 소지가 있다. 실제로 군형법이 규정하는 군무이탈의 죄, 항명의 죄, 명령위반죄 등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해 사건별로 법관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또 일반 형법에서 벌금형을 내리는 범죄가 군대 내에서 발생하면 군형법에 따라 징역 등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임지봉 교수(건국대 법학과)는 “범죄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더불어 과도한 형은 군인들의 인권을 심각히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일반 사회에서는 판사의 판결이 독립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과 달리 군사법원에서는 군판사의 판결이 상급 지휘관의 승인을 거쳐야만 최종 선고될 수 있다. 실제로 장교급 인사의 범죄에 대해 군사법원에서 형벌을 결정했으나 지휘관이 감형 조치한 바 있다.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지휘관 관할권은 판사의 판결에 제한을 가해 사법 독립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실제 적용되는 과정에서 일반 병사의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군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고질적 병폐로 상명하복의 군대 운영 방식도 지적됐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평균 구타 6%, 가혹행위 9.6%, 언어폭력은 28.4%의 병사가 경험했고 이후 탈영이나 자살을 생각한 병사도 20%에 가까이 달한다. 이재승 교수는 “70~80년대 잦았던 군의문사, 구타, 자살 등의 문제가 가시적으로는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근절되지는 못했다”며 “군 문제는 폐쇄된 사회 안에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개선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군 문제를 외부적으로 공론화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군 조직 운영을 위한 제도 및 병영 문화의 개선을 위해 독일식 ‘군옴부즈만제도’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군옴부즈만제도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직접 나서 △군인의 고충 처리, △전문적 의견 표명, △강력한 조사권한을 행사 등을 내용으로 한다. 송기춘 교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일반적으로 군대 내에서 특정 종교활동에 대한 금지 혹은 강요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종교단체들의 지속적 관심이 작용한 결과”라며 “군대 사회도 국민적 관심이 제도화된다면 군인의 권익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국방감독관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돼 군인의 인권 보장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방감독관은 언제든지 군대를 방문해 군인의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군대의 상황을 감시할 수 있다. 현재 1년에 5천 건 정도 군인의 고충이 조사·처리되고 있으며 접수된 사건을 공개적으로 문제화해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지난 2005년 국방부는 선진 정예 국방을 위해 국방비 증액, 대북 안보 증강 등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 2020’을 실시했다. 하지만 군인 개개인의 인권 문제 개선을 위한 개혁안은 전무해 진정으로 선진화된 군대를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