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막걸리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사진: 신동호 기자  clavis21@snu.kr
허시명씨는 요즘 바쁘다.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막걸리학교 교장인 그도 막걸리에 관한 강연을 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모교 선배인 그에게 학부 시절에 어땠는지 묻자 그는 “사실 누룩 국(麴)자 국문과를 나왔다”고 농담을 건네며 “대학시절 녹두에서 밤새도록 싸고 배부른 막걸리를 마시며 친구들과 사회 담론을 주고받은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추억을 끄집어냈다.

문득 그가 국문학도에서 막걸리학교 교장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해진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전통문화 전문 교양지 기자 활동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다 민속주가 갖은 맛의 깊이에 주목하게 됐다”며 “일제 강점기 때 가정에서의 술 제조가 금지되고 잦은 전쟁 속에서 많은 양조장이 불타 사라진 뒤 몇 종류 남지 않은 한국 술 중 하나인 막걸리에 대해 알리고 싶어 학교를 설립했다”고 막걸리와의 인연을 얘기했다. 얼마 전 4기를 모집한 막걸리학교는 짧은 운영 기간에도 술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연으로 가득하다. 식품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교수 혹은 실제로 양조장을 운영하거나 주류 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와인 소믈리에도 있다.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부지기수고 심지어 매주 일본에서 오는 사람도 있다. 목적도 다양하다. 그는 “어떤 분은 40년 동안 모르고 있던 막걸리란 것을 이제야 알았다고 말하더라”며 “자기가 마시는 술이니 직접 빚어서 먹고 싶다는 경우, 정년을 맞이하고 귀향을 했는데 친구들을 시골로 부르려고 맛있는 술을 빚어야 한다는 경우, 정말 술 자체를 사랑해서 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그는 이름 앞에 ‘제1호 술 평론가’라는 직함을 붙였다. 와인의 소믈리에, 청주의 키키사케시 자격증 등이 우리 술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단 이름이란다. 그는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은 물론  제조하는 양조장 사람들까지 그저 마시거나 만들 뿐 정작 뗄래야 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며 “예로 족발 골목에 있는 족발을 보고 있자면 어느새 족발집에서 일하는 아지매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되는데 막걸리는 막걸리 만드는 사람이 연상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마시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사이의 유기적인 끈끈함을 채워주고자 술 평론가가 됐다는 그는 “우리 술을 평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소망하는 마음에서 첫 출발의 신호탄을 울린 것”이라며 직함에 담긴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술 평론가 허시명이 막걸리 문화에서 가장 시급한 발전 과제로 꼽는 것은 무엇일까. 돌아온 대답은 바로 ‘막걸리의 다양성’이다. 그는 “전국 780여개 양조장에서 나온 술이 일괄적으로 ‘막걸리’로 통일돼 불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는 소비자에게 막걸리 종류에 대한 선택권이 없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생산자의 의욕을 떨어뜨려 품질하락을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소주는 무(無)맛이지만 막걸리는 예부터 집집마다 빚어온 가양주(家釀酒)로 다양한 맛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며 “장수막걸리, 불로막걸리 등과 같이 각자 이름을 갖는다면 그것에 자부심을 갖고 변치 않는 자기만의 개성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술의 ‘맛’뿐만 아니라 막걸리에 담겨있는 ‘문화’를 들며 막걸리를 재조명한다. 그는 막걸리가 단순한 천원짜리 상품이 아니라 일본의 청주나 중국의 소주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술이라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잔혹하게 싸워야 하는 전쟁을 많이 한 일본과 중국의 술은 그만큼 독주가 많다”며 “반면 한국의 술이 저도주(低度酒)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순한 심성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막걸리가 하산(下山)주나 갈증해소 음료의 역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술자리에서 보통 도수 높은 술을 누가 더 잘 마시냐가 관건이 되는데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같이 술문화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이어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해 도수가 낮아 남녀노소 모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데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며 “사람들 사이의 소통 매개로 막걸리의 가능성이 재발견되길 바란다”고 소망을 밝혔다.

“지금 여기 내 앞에 있는 막걸리를 만든 사람은 어디 있을까”라며 얕은 한숨을 뱉으며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시는 그에게 최근 담가놓고 익기를 기다리는 술이 있냐고 묻자 “복분자 막걸리가 있다”며 천연한 미소를 짓는다. “사람과 문화가 빠져있는 막걸리는 천 원짜리일 뿐이다. 진정한 문화상품으로서의 술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시금털털한 웃음에서 술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진한 애정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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