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어노문연극회 ‘에르떼수스’연극 <물에 빠지는 사람>, <기념일>
극은 서서히 퍼지는 커피 향처럼 잠시도 멈추지 않고 관객을 향해 밀려들어 온다. 조용히 수면으로 떠오르는 건달의 시체를 바라보며 관객들이 숨을 돌리려는 순간, 은행직원 히린이 무대에 오른다. 히린은 저녁에 열릴 은행 기념식에서 발표할 보고서를 쓰느라 여념이 없다. 언뜻 보면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지만 사실 히린은 은행의 대표이사 쉬뿌친이 발표할 보고서를 대신 쓰는 중이다. 심지어 기념식은 망해가는 은행을 홍보하기 위해 쉬뿌친이 벌인 자작극이기도 하다. 이렇듯 각각의 진실의 파편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씁쓸함 그 자체다.
결국 단돈 8,000원에 검푸른 강물을 향해 몸을 던진 건달과 익사한 그를 내버려둔 채 자리를 떠나는 행인. 은행은 망해가고 있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직접 축사를 쓰고, 자기 돈으로 공로패를 만들어 거짓 기념일을 여는 쉬뿌친. 체호프는 외면적으로는 평범하지만 사회의 부조리함을 묵시하고 속물근성에 찌든 인물들을 통해 사회가 머금은 ‘쓴맛’을 낱낱이 보여준다.
하지만 이 쓴맛은 전혀 낯설지 않다. 처음에는 건달의 제의를 거절하지만 점차 그의 ‘목숨 값’을 흥정하는 행인을 보며 관객은 어느덧 건달의 죽음에 동조한다. 그리고 행인이 물 속 깊이 가라앉을 때 관객 역시 이를 함께 묵시한다. 한참 보고서를 작성하던 히린이 갑자기 옆에 앉은 관객에게 묻는다. “너라면 저 무능력한 인간(쉬뿌친)을 어떻게 할래?” 총 자루가 건달에게서 행인을 거쳐 관객으로, 그리고 총 자루를 거머쥔 관객이 히린을 통해 무대 속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그들은 깨닫는다. 극 속 정황과 자신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유기체임을. 이렇듯 체호프는 일상 속에 내재된 면면을 부서 새로운 무대를 만들고 그 주인공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체호프는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뚜렷한 해결책 없이 소통의 단절과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때문에 발생하는 갈등만을 보여줄 뿐이다. 결국 극이 주는 쓴맛을 느끼는 것도, 그것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관객인 당신의 몫이다.
양기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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