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좋아하는 분들은 작년 이맘때쯤 벌어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을 선명히 기억하실 테다. 일본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석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잊지 못할 명승부를 펼친 선수들로 인해 야구팬들은 무척 즐거웠다. 고생한 선수들 포상금도 두둑이 받으려니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상대로 고소했다. 포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법원에 제출된 서류를 검토해보니 KBO가 준우승 배당금을 엉뚱한 명목에 지출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KBO 측의 회계실수로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 믿고 싶은데 사실 한국 프로야구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쌓여 있다고 한다. 프로야구 1군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처우는 좀 낫다고 하지만 이들은 전체 선수의 1/4을 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을 넘는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대우 속에서 자신의 젊음을 바치고 있다. 작년 최고의 2군 선수로 뽑힌 선수의 연봉이 2,000만원에 불과하다고 하니 나머지 2군 선수들의 사정은 불 보듯 뻔하다. 그 밖에도 군보류수당, 비활동기간 준수, 연봉 책정 등에서 일방적이고 부조리한 요소가 산적해 선수협에서 개선을 요구했으나 KBO 측은 묵묵부답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고자 선수협은 법적 강제성을 갖는 노조로의 전환을 결정하고 작년 연말 선수들의 투표로 이를 확정했다. 이에 대해 KBO와 각 구단은 시기상조라느니, 프로야구선수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느니, 구단 운영을 포기하겠다느니 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후 선수협이 결성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1988년과 2000년 1, 2차 선수협 파동을 거쳐 2001년 결국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받게 됐으나 주동 선수들은 대부분 방출되거나 트레이드 당했다. 총대를 메고 앞장섰던 최동원, 김용철, 양준혁, 마해영 등 스타선수들이 괘씸죄 차원에서 팀을 옮겨야 했으며, 몇몇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출장이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탄생한 선수협마저도 ‘인정’만 됐지 ‘대화’ 상대로는 여겨지지 않아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선진국이라 그런지 미국에도 일본에도 프로야구선수노조가 있다. 물론 그들도 노조 결성까지 험난한 여정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여러 비합리적인 요소들을 개선해왔고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왔다. WBC도 ‘메이저리그선수노조’가 ‘메이저리그사무국’에 제안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야구 노예도, 야구 기계도 아니다. 야구를 매우 잘 하는 하나의 ‘인간’이다. 타율, 타점, 방어율 등 수치 뒤에 숨겨 있는 그들의 땀방울, 번뇌, 갈등에 한 발짝 다가서려는 노력을 올해의 프로야구 관전 포인트로 삼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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