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등 제도적 제한으로
지속적 연구 어려운 원로교수들
연륜과 경험 발휘할
연구 및 교육 활동 기회 보장해야

박혜준 교수
생활대 소비자아동학부
앞으로 10년간 정년을 맞이하는 교수가 1만 6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발표된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원로연구자지원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대학에 재직 중인 20대부터 6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층의 교수 5천 300명의 응답자 중 자신의 전공분야와 관련 있는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한 교수가 77.5%라고 한다. 하지만 정년퇴임 등의 제도적 제한때문에 원로학자들이 학문 발전과 후학 양성에 지속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이 어렵다. 경희대는 올해 초 연구성과와 학문적 성취도, 강의평가 등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정년을 70세로 연장해 원로교수들의 연륜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부 대학에서도 정년 연장 방안에 대하여 검토 중이라고 한다.

최근에 정년퇴임을 하신 많은 교수님을 생각해보면 정년을 맞이하는 학기까지 학문에 대한 열정과 변함없는 애정으로 연구와 교육, 그리고 적극적인 사회봉사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다. 명예교수제도를 활용하여 강의를 계속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정년 이후 더욱 적극적인 저술 활동과 사회환원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런 원로교수님들의 모습은 후배 교수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이처럼 연구 분야의 특성과 학문의 성격에 따라 정년 이후에 학문의 발전과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따라서 엄격한 심사를 거친 정년연장방안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는 있지만 그 엄격한 심사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학문의 성격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그 완성도가 깊어지고, 짧은 학회지의 논문만으로는 자신의 연구내용을 담을 수 없는 분야도 많기 때문에 정년연장을 위한 심사의 일정한 기준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고령화 사회에서 65세와 70세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정년이 연장된 5년 동안 다시 대학이라는 틀 속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계속할 기회가 분야에 따라 필요할 수 있다. 동시에 정년퇴임 이후의 시기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더 많은 사회구성원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학교의 틀을 벗어나서 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필요한 분야도 많다. 따라서 정년연장을 위한 심사의 기준은 교수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미국 교육학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여겨지는맥신 그린 교수는 올해 93세이며, 컬럼비아대학교 티쳐스 칼리지의 석좌교수이다. 맥신 그린 교수는 문학과 예술, 상상력과 교육, 그리고 개인적 성찰과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 교육철학자이며 저술가이고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일이 삶 그 자체인 분이다. 필자는 맥신 그린 교수의 강연을 두 번 들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신의 제자들이 가르치는 수업에 종종 특강을 와주셨는데, 그때가 80세가 되셨던 1998년이었다. 두 번째 강연은 2008년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교육학회(AERA)에서 하버드대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를 비롯해서 현재 미국의 교육학계를 이끌고 있는 여러 명의 석학들과 함께 심포지움에 참석하셨다. 짧지만 학회장의 바닥까지 자리를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강연을 하셨다. 10년 전과는 달리 휠체어에 앉아서 말씀하셨지만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넘쳤고 유머와 위트는 여전하셨다. 두 번의 짧은 강연이었지만 90세의 원로학자가 전하는 교육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 분야에서 반세기가 넘게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현장과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그리고 수많은 제자에게 영감을 주고, 그 제자들이 다시 새로운 제자들을 길러내는 꿈같은 일들이 꿈이 아닐 수 있다는 작은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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