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서평] 증보『정본 이상문학전집』

김주현 주해 『정본 이상문학전집』 증보판을 읽고

필자가 이상문학 연구를 위해 객원 연구원으로서 서울대에 온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입국 직후에는 권영민 교수가 엮은 『이상전집』(뿔, 2009)이 출간됐고, 이상 탄생 100주년을 앞둔 지난 연말에는 김주현 교수가 주해한 『정본 이상문학전집』(증보판, 소명출판, 2009)이 출판됐다. 일본 도쿄의 한구석에서 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이상문학 텍스트와 대면해 온 사람으로서 체류 기간에 이 두 가지 판본의 이상 전집 출간을 직접 목격한 것은 행운이었다. 여기에 필자가 신경의 긴장과 학문적 욕망의 고양(高揚)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전집’이라는 것은 편집자와 원작자의 ‘지(知)’의 장렬한 전면대결이며 두 에너지의 적나라한 경합이다. 이 때문에 전집의 편찬에는 연구자의 강인한 정신이 요구된다. 섬세한 문학 텍스트는 더욱 그러한데, 특히 이 경우는 위트와 패러독스의 귀재인 이상의 문학 텍스트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동료 연구자로서 김주현 교수가 감당했을 중압감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으며, ’지’의 후속 세대로서의 특권을 남용하고 싶은 유혹을 거절하는 김주현 교수의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김주현 교수가 2005년 『정본 이상문학전집』을 출간한 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번 증보판에서도 텍스트를 충실히 재현하고 조심스럽게 주해(註解)하려는 태도는 여전하다. 김주현 교수의 주해는 독자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관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구판의 3,700개 주석 위에 1,200개의 주석이 더해졌다. 부록 <연보로 보는 이상>도 최근의 이상연구 활동에 관한 정보를 포괄하고 있어 한층 더 내용이 풍부해졌다. 또한 그동안 원문을 찾을 수 없었던「혈서3태」(『신여성』, 1934. 6.)를 발굴해 수록한 것은 향후 원전 불명의 자료 조사에 격려가 될 것이다.

증보판 『정본 이상문학전집』이 필자에게 특히 유용했던 것은 이 전집이 용자법(用字法, 특히 시대적 메시지가 숨어 있는 한자어휘)과 구두점 등에서 원형을 해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유감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즉 한자 어휘가 제시하는 정보와 관련된 과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두 가지 들어 보자.

첫째는 소설 「지도의 암실」이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중국어 삽입부에 대한 주해는 다소 구태의연해 보인다. “離三茅閣路 到北停車場 坐黃布車去” “你上那兒去 而且 做甚麽?”(삼모각로부터 북정거장까지 황포차로 간다/ 당신은 어디로, 게다가 무엇을 하러 가는가?)에 관한 주석에서 김주현 교수는 초판에서와 같이 ‘你上(니산)’은 이상 이름의 소리를 따라 쓴 것이라는 김윤식 교수의 해석(김윤식 편저, 『이상문학전집』, 문학사상사, 1991, 177쪽)을 계승하면서, ‘離三’도 ’你上’과 같은 의도라는 사에구사 교수의 견해를 신중하게 덧붙이고 있다.(154쪽) 하지만 이것은 ‘三茅閣路(삼모각로)’ 와 ’北停車場(북정거장)’ 두 개의 어휘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긴 유감스러운 계승인지도 모르다. ‘북정거장’은 상하이의 교통 중추로 ‘제1차 상하이사변’ 당시 격전지가 되었으며 ‘삼모각로’는 삼모각(도교 사상에 있어 중요한 존재인 ‘三茅眞君’의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부터 유래한다. 「지도의 암실」이 ‘상하이 사변’ 중에 집필된 점에 비춰볼 때, 상하이의 실제 지명을 옮겨 놓은 이 대목을 중요 항목으로서 주해해야 한다. 요컨대 이 중국어 삽입부는 이상의 이름을 표출하기 위한 언어유희의 차원보다 더 심층적인 고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덧붙여 중국과의 관련성을 생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 ‘예로센코’에 대해서도 그가 러시아의 시인이라는 점을 밝히는 데 그치는 주석으로는 설명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 주인공의 ‘문자’에 관한 사고와 연결해 생각해보면, 예로센코와 에스페란토의 관련을 언급한 김윤식 교수의 주해가 비교적 적당하다고 생각한다(177쪽)(예로센코는 에스프란토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탓에 일본으로부터 추방당해 상하이로 건너가 얼마간 활동한 뒤, 루쉰의 초대를 받아 북경대 세계어과에서 에스페란토를 가르치고 있었다.)

둘째는 시 「소영위제」 이다. 이 시의 제목은 그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띄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굴원(屈原)의 「九章.橘頌」(“深固難徙、更壹志兮。綠葉素榮、紛其可喜兮”(뿌리 깊고 단단해 옮기기 어려우니 네 곧은 뜻 보이누나/ 푸른 잎 하얀 꽃(소영)은 어지러이 즐겁게 하노라)에서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굴원의 ‘소영’ 즉 귤의 꽃은 어떤 장소에서도 고국을 사랑하고 고결하게 살려는 자세를 표현하는 상징이다. 게다가 「소영위제」는 요코미쓰 리이치의 단편 「푸른 대위」 에서 그린 조선인의 ‘데드 마스크’의 그림자도 농후하다. 이상의 이 시가 ‘남녀의 갈등’을 표현한 것이라는 기존의 연구 시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지금까지 감히 이러한 실례를 든 것은, 기존의 이상문학 연구에서 이상의 ‘동양’에 대한 관심과 동북아시아 정세에 대한 이해가 간과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서문에 이와 같은 말을 남겼다. “이상의 언어는 광대무쌍했으며, 가히 독보적이었다. 이번 작업에서 그의 어휘에 대해 또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어휘를 새롭게 많이 밝혀냈지만 여전히 미해결의 것들이 남아있다.”(26쪽) “이상은 여전히 문제적이다.”(26쪽) 물론, 틀림없이 그렇다.

「지도의 암실」에 퍼져 있는 동아시아, 그리고 한적(漢籍) 특히 일본 문학 텍스트와의 밀접한 관계 등은 이상문학 연구가 한국 현대문학의 골조를 넘어서기를 요구한다. 달리 말하면 동아시아 현대문학 네트워크적인 시각을 이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식민지 정치 통제하의 동아시아 문학의 표상으로서, 그리고 문학과 예술이 대규모 월경(越境)을 일으켰던 시대를 읽는 적당한 텍스트로서의 『이상전집』의 생산! 김주현 교수는 이 새로운 유혹을 견딜 수 있는 것일까. 교수님이 이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직은 좀 먼 미래의 일이 아닐까. 이번 증보판을 손에 넣고, 나는 그런 상상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5년 전 김 교수의 『정본 이상문학전집』이 출판되었을 때  도쿄에서 교보를 통해 그 책을 구입한 뒤, 안면도 없는 김 교수께 편지를 썼던 적이 있다. 이 짧은 글로 그때 보내지 못한 편지를 대신하고 싶다.


정본 이상문학전집 1; 시
이상 지음┃김주현 주해┃소명출판┃289쪽┃1만7천원

정본 이상문학전집 2; 소설
이상 지음┃김주현 주해┃소명출판┃407쪽┃2만원

정본 이상문학전집 3; 수필·기타
이상 지음┃김주현 주해┃소명출판┃360쪽┃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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