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논란, 누구를 위한 밥그릇 싸움?
도서정가제 논란, 누구를 위한 밥그릇 싸움?
  • 대학신문
  • 승인 2010.03.2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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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째 합의점 못찾는 온·오프라인 서점과 출판계
수익 문제뿐 아니라 출판 문화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

지난 2월 24일 서점·출판계 단체장들이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긴급 기자 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경품할인을 포함해 신간 도서 할인율을 10%까지 제한한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서정가제 개정법안에 대해 규제개혁위원회가 “가격 할인 10%에 경품할인 9%까지 할 수 있었던 예전 법을 유지”하라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오프라인 서점 및 출판업계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처사가  중소 서점과 영세출판사를 완전히 몰아내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남긴 잿빛 현실

2007년 ‘18개월 이내의 신간은 10%까지만 할인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도서정가제 법이 제정됐지만 온라인 서점은 그동안 마일리지, 경품 등을 통해 9% 할인을 추가하여 사실상 최대 19%의 도서 할인이 가능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5천개가 넘었던 오프라인 서점 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2천개가 채 되지 않는다. 추가 할인을 통해 소비자를 획기적으로 그러모은 온라인 서점의 그늘에 가려 오프라인 서점들이 고사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출판연감의 통계를 재구성한 예스24의 온라인 서점 매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서점은 몇 년 새 도서 판매의 연간매출액 중 37% 이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조재은 유통위원장은 “대표적인 온라인 서점은 가장 큰 오프라인 서점 매출의 두 배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서점과 출판계는 도서정가제 개정안 요구가 그들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는 입장이다. 온라인 서점 중심의 제한 없는 할인은 온라인 서점의 기형적인 성장을 부르고 결국 그들이 오프라인 서점과 출판계를 상대로 ‘횡포’를 휘두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린비 출판사의 이병훈 마케팅 팀장은 “온라인 서점들이 매출 점유율을 내세워 출판사에 낮은 가격에 책을 입고하도록 압박을 넣는다”고 귀띔하며 “책을 할인해 주지 않으면 판매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에 아동서를 정가의 30~40%에 불과한 가격에 입고한 출판사도 있다”고 말했다.

또 현 도서정가제에 의한 할인이 유지될 경우 이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이목을 끌려면 오프라인 서점과 출판계는 ‘박리다매’ 식 판매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조 대표는 “책을 만든 후 유통비와 인세를 떼고 65~75%의 가격으로 서점에 입고하는 것도 모자라 가격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추가할인을 하면 사실상 적자”라고 밝혔다. 특히 영세출판사들에게 이러한 판매전략은 치명적이다. 박리다매 식으로 수익을 이어나가기엔 영세출판사의 자본구조가 대형출판사에 비해 턱없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프라인 서점과 출판계의 주장에 대해 온라인 서점들은 충분한 근거가 없다며 반박한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김성동 마케팅 팀장은 “온라인 서점이 오프라인 서점보다 할인을 더 할 수 있는 것은 고객의 범위가 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판사에서 각 서점으로 책을 유통하는 유통업자들은 서점이 구입하는 물량에 따라 각기 다른 가격으로 책을 제공한다. 이 때 서점이 구입하는 책의 수량이 많을수록 권당 가격은 내려간다. 즉 온라인 서점이 더 할인할 수 있는 것은 구매 물량이 많은 온라인 서점의 특징 때문이지 현행 도서정가제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출판 문화 좌우하는 도서정가제

현행 도서정가제엔 온라인·오프라인 서점과 출판계의 수익 문제만 얽혀있는 것은 아니다. 도서정가제의 개정 여부는 장기적으로 출판시장의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다. 우선 온라인 서점의 대폭 할인을 제한하지 않으면 도서 종수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판시장의 과도한 가격경쟁을 막을 수 없어서 시장성이 떨어지는 인문·학술 서적 등은 출판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어렵게 출판된다고 하더라도 온라인 서점이 지배적인 유통구조에서 시장성이 떨어지는 서적들은 판매되기가 어렵다. 정일근 시인은 이에 대해 “온라인 서점에서는 팔리지 않는 책을 오래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인문·학술 서적은 판매하기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학술서적의 출판 위축 외에 역시 비슷한 이유로 다양한 작가들의 책 출간을 막는다는 시각도 있다. 과도한 가격경쟁의 압박을 받는 출판사는 역량 있는 신인발굴을 시도하기보다 상품성이 이미 증명된 인기 작가와의 계약만을 고집하기 쉽고 이에 따라 신인작가들은 출판 기회를 잡기가 어려워진다. 현재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은 영국 출판시장 대부분이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앤 롤링 등 유명한 작가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일근 시인은 “팔리지 않더라도 양서인 것들이 많은데 이 책들의 출판을 막는 현 제도는 사실상 작가의 창작 기회를 박탈하는 현대판 분서갱유”라며 현 정가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온라인 서점들은 도서 할인 폭이 축소되면 출판시장 전체가 위축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서정가제가 개정돼 할인폭이 작아질 때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던 구매자가 감소할 뿐 해당 인구가 오프라인 서점으로 이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김성동 팀장은 “도서정가제의 개정안이 시행되면 자체적으로 평가했을 때 30%이상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여겨진다”며 도서정가제 개정은 오히려 전반적인 독서인구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고말했다.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인문·학술 서적이나 신진 작가의 출간 부담을 덜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양측의 치열한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도서정가제 개정안 논란은 서점과 출판계의 수익성 문제를 넘어 출판문화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프랑스는 1979년 책을 시장거래에 자유롭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도서정가제를 폐지했는데 이듬해 학술서적의 종수가 전년 대비 25%나 감소했다. 이후 프랑스는 다시 도서정가제를 시행했다. 우리도 도서정가제의 진정한 목적과 출판문화의 미래를 숙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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