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아시아의 지식인 - 아마르티아 센

합리적 바보(rational fools)를 퇴출시킨 경제학
개발도상국의 인권과 빈곤을 되짚다

빈곤과 불평등, 삶의 질과 행복, 자유와 민주주의, 인간의 주체적 행위까지 반영해 ‘센코노믹스(Senconomics)’라는 새로운 경제학의 방법론을 마련한 아마르티아 센은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민주적 가치, 인간의 윤리적 관계까지 아우르는 센코노믹스

아마르티아 센은 영국의 식민지 시절이던 1933년 인도 동부의 벵골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시절 벵골에는 대기근이 일어나 굶어  죽은 사람만 2백만 명이 훨씬 넘었다. 어린 센은 학교 교정에서 굶주려 비틀거리고 심지어 착란상태에 빠져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센이 어린 시절 경험한 기근, 전쟁, 굶주림, 종교적 분쟁은 그의 사상과 정체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동시에 현재와 미래에 걸쳐 민주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굳건히 갖게 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에게 개방적 공공논의를 열어 민주적 가치를 형성하며 정치적 유인까지 이끌어 인권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든 종교·문화적 차이를 포용하는 관용의 정신과 민주주의가 결코 서구 전통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센은 서구의 자민족 중심주의를 타파하고 민주적 가치와 관용이 아시아에도 깊이 뿌리내린 보편적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센코노믹스라고도 불리는 센의 경제학과 철학은 현대경제학 사상 구조의 근간인 공리주의의 비판에서 시작한다. 공리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보다는 재화와 개인 사이의 효용적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쾌락(만족, 효용)을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이기적 경제인)가 전제됐기 때문이다. 센은 공리주의를 비판하며 이기적 행위와 효용 극대화로 결국은 전체의 비극을 가져오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합리적 바보(rational fools)’라고 불렀다. 센의 합리적 바보는 정신적으로 빈약한 이기적 인간상이었다. 이제 경제학도 인간의 행동 동기와 윤리적 관계를 더욱 넓게 포함해야 했다.


빈곤은 잠재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의 박탈을 의미

센은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있던 1980년대부터 불평등과 빈곤 문제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렸다. 우선 빈곤의 개념을 새롭게 바꿨다. 빈곤은 구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재화소득의 부재에 비례하지 않았다. 그는 잠재능력을 키울 기회 박탈의 상태를 빈곤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센은 빈곤국가에 무조건적 물자 원조보다 잠재능력을 키울 기회, 교육, 건강, 영양상태, 선택을 위한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근의 근본 원인 역시 자연재해가 아니라 민주주의 결여 등 정치적 요인에 의한 권리박탈이었다.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마저 침해당하는 상황에서는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한쪽에서는 광범위한 빈곤이 발생하게 된다. 정치참가나 시민의 적극적 참여로 형성된 민주주의 제도와 안전보장(security)이야말로 기근의 방지와 근절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1994년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 연차보고서에서 센이 제시한 ‘인간의 안전보장’이란 사고 개념은 순식간에 세계에 확대됐다. 인간의 안전 보장론은 현재 안전보장의 문제가 이미 동서 문제(냉전)가 아니라 남북문제(빈부격차)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여기서 센은 개발도상국의 빈곤, 계급이나 소득격차에 기초한 불평등이 내전이나 분쟁을 일으키며, 사회와 정치의 민주주의 발전이야말로 고용 안정, 소득, 건강, 환경, 치안을 확보하고 사람들의 안정을 지켜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생태와 환경문제, 불평등과 빈곤 등으로 깊은 모순을 안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한국 사회의 내부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물질 성장의 그림자가 깊숙이 드리워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센의 통찰력과 메시지가 빈부격차와 양극화, 물신주의, 과도한 개발과 성장, 생태환경의 파괴 등을 조금이라도 성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원용찬 교수
전북대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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