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동남아시아의 역사적 구성’학술대회동남아 지명과 지역 구축에 대한 국내 최초 학술대회동남아라는 지역은 20세기 형성된 역사적 산물

 

동남아로 지칭되는 지역의 ‘원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원래’ 이름은 없음”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누가, 어떤 이유로 이 공간을 통틀어 동남아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또 어떤 맥락에서 이 명칭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는가? 동남아연구를 수행하는 서강대 동아연구소가 19일(금)부터 <동남아시아의 역사적 구성>이란 주제로 이틀간 개최한 국제학술회의는 국내 처음으로 학술적 틀에서 위의 질문을 제기하고 답을 숙고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이 회의는 동아연구소 HK동남아연구사업단의 ‘동남아연구사’와 ‘동남아 인식’이라는 두 클러스터가 일 년간 수행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장이기도 했다.

‘동남아연구사’는 세계 각국 동남아연구의 역사를 소개하고, 동남아라는 지명의 정착 및 지역의 구축이 동남아연구와 맺는 관계를 탐구했다. 이 회의에서는 동남아라는 지역 개념이 20세기에 형성됐고, 본격적인 동남아연구도 20세기 중반부터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익한 발표와 논의가 이뤄졌다. 빅터 킹 교수(영국 리즈대)는 ‘영국 동남아연구의 발전사: 지역 만들기’에서 동남아가 하나의 지역으로 인식되도록 유도한 역사·지정학적 맥락을 폭넓게 일별했다. 또 동남아라는 지역이 외부(영국과 유럽) 세계에 의해 규정된 과정을 분석하고, 유럽에서 이런 현상이 이 지역과 관련된 연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논의됐다. 한편 프레이크 콜롬바인 교수(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는 ‘네덜란드 식민지배의 짐: 인도네시아연구와 관련하여 탈식민화 시대에 네덜란드가 소장하고 있는 식민시대의 자료’에서 네덜란드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이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연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봤다. 또 아리엘 헤르얀토 교수(호주국립대) 는 현재 아시아를 휩쓰는 대중문화를 어떻게 지역연구와 관련해 다룰 수 있는지 논의했다. 동남아연구사 클러스터를 통해 미국, 유럽, 호주 중심의 기존 동남아연구사에서 벗어나 새롭게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에서 이루어지는 동남아연구사를 일별했다는 점에서 이 학술회의의 의의가 크다 하겠다.

‘동남아 인식’ 클러스터는 여행기를 분석해 1900년 전후 사람들이 현재 동남아라고 불리는 지역을 여행하며 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발표했다. 발표자들은 여행기에 그려진 동남아라는 지역이 “과거와 현재의 표상적인 공간”(캐나다 레스브리지대 마리아 응 교수), “‘발견’된 공간”(아랍에미리트 샤르자아메리칸대 스테판 켁 교수), “공유된 상상의 공간”(서강대 동아연구소 김은영 교수)으로서, 이 공간이 외부 세계에 의해 전유·재해석되는 현상을 문학·역사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동남아에 대한 외부 세계의 인식이 어떻게 인식 주체인 외부 세계의 현실을 반영하는지, 혹은 어떻게 인식 객체인 동남아의 현실을 반영하는지 논의했다. 또 이런 외부의 인식이 동남아라는 지역을 구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숙고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늘날 동남아의 특수성이라고 간주하는 많은 요소가 실상은 외부 세계의 담론 안에서 취사선택된 것임을 지적했다.

이 학술회의를 통해 각국에서 이뤄지는 동남아연구사 경향을 비교분석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그리고 동남아라는 지명 및 지역이 항구적으로 존재했던 자명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축된 것임을, 따라서 동남아에 대한 인식과 동남아연구도 역사적 구성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동남아라는 지명을 사용하더라도 이 지명이 내포하는 연대기·인식론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동남아라는 공간을 연구할 수 있는 학문적 공감대가 강화됐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이 회의는 한국과의 교류가 날로 증대하는 동남아 지역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제고하는 전기이며, 한국이 주도하는 동남아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국제적 공조를 다지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된다.

 


김은영 교수
서강대 동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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