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종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약방의 감초’다. 1977년 완전한 식량자급을 이뤄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한국도 육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한국 육종 기술이 태동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스타’들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한국 육종사(史)가 품은 일화들을 알아보자.


지난해 서거 50주년을 맞은 우장춘 박사는 한국 육종의 대부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알려진 ‘씨없는 수박’은 놀랍게도 그의 작품이 아니다. 사실 씨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사람은 일본인 기하라 히토시다.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은 우 박사가 국내에서 시식회를 가지던 중 와전된 것이다. 그래도 우 박사가 당시 한국 최고의 육종학자였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윈의 진화론을 실증한 ‘종의 합성’ 논문을 발표하고 ‘우의 삼각형’ 이론을 만들어낸 그는 이미 세계적 스타였다. 우 박사는 귀국 후에도 타계 전까지 채소 작물의 자급과 씨감자•감귤 재배 연구에 헌신했으며, 농촌진흥청은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려 ‘우장춘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진행한다.

‘통일벼’도 한국 육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다. 당시 정부가 주도했던 경제 성장 계획의 필수 조건은 식량 자급이었는데, 이를 위해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품종이 필요했다. 당시 국내 연구진은 키가 작은 인디카 벼와 밥맛이 좋은 자포니카 벼의 교잡에 도전했다. 이는 일본 기술진도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어려운 과제였지만 연구진의 노력과 필리핀의 협력으로 개발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통일벼가 탄생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도지사들을 일일이 만나 통일벼의 보급을 독려했고 이에 따라 다른 벼가 자라던 못자리를 뒤엎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 그 덕분인지 통일벼는 2009년 7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국가연구개발 반세기의 10대 성과’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 육종 기술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로 뻗어나가 족적을 남겼다. 김순권 교수(경북대 응용생물학)는 외국인에게 적대적이기로 유명한 나이지리아 이니샤 마을에서 명예 추장으로 두 번이나 임명되며 마에군(가난한 자를 먹여살리는 자)•자군몰루(위대한 승리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는 그가 기아로 굶주리던 검은 대륙에서 17년 동안 교잡 옥수수를 재배하는 데 헌신한 결과다. 김 교수가 개발한 ‘오바 슈퍼 1호’는 바이러스와 독성 잡초, 가뭄 등에 강한 품종으로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 교수팀은 최근 사료용 슈퍼 옥수수를 개발하고 청정에너지원인 바이오 에탄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오대근 교수(국립한국농수산대 식량작물과)는 “종자산업은 기술과 자본 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우수한 인적자원과 기술개발 능력이 있는 한국에 적합하다”며 한국 육종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현재 한국은 유전자원 보유량 6위답게 품질과 생산성을 향상시킨 다양한 작물을 생산•수출 중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한국 육종이 앞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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