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공간에서 길 찾기는 너무 어려워요!
캠퍼스가 넓어도 부족하기만 한 공간
공간계획 시스템에 문제점은 없을까?

국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서울대의 캠퍼스. 200개도 넘는 많은 건물이 자리잡고  교내 도로를 지나가는 시내·마을 버스 노선도 4개나 되는 서울대는 소규모 도시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번 기획에서는 이러한 ‘서울대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건물과 캠퍼스의 공간을 총체적으로 분석해본다.
삽화, 그래픽: 유다예 기자 dada@snu.kr,

넓은 공간에서 길 찾기는 너무 어려워요!


입학한 지 한 달이 갓 넘은 새내기 ‘길잡이’씨는 아직 캠퍼스 지리에 익숙하지 않다. 멀티미디어강의동인 43-1동에서 수업을 듣지만 43-1동 근처에는 30동, 56동 등이 있어서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헷갈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길잡이씨는 ‘곧 익숙해지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다음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길잡이씨의 사례처럼 서울대는 캠퍼스가 넓고 건물이 많지만 정돈된 체계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무질서한 건물 체계의 바탕에는 어떤 역사가 자리잡고 있을까.

◇캠퍼스 지리 파악에 도움 안 되는 건물 번호

2010년 3월 기준으로 관악캠퍼스에는 208개, 연건캠퍼스에는 29개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상식적으로 비슷한 번호대의 건물은 서로 인접한 곳에 위치하지만 캠퍼스 내 건물들은 무질서하게 배치돼 구성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동 번호 배치는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개교 당시 서울대의 캠퍼스는 동숭동, 연건동, 소공동 등에 분산돼 있었지만 1968년 발표된 「서울대 종합화 10개년 계획」에 따라 1970년 관악에 종합캠퍼스를 마련하게 됐다. 당시 행정관과 중앙도서관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1~15동까지 인문대, 사회대, 사범대를 배치하고 오른편에는 20~28동까지 자연대를, 30~50동까지 공대를 배치했다. 60번대의 건물은 본부 부처나 사육장을, 900번대는 기숙사를, 기숙사를 제외한 100번 이상의 동은 본부부속시설로 체계를 정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초기 설립단계에서는 인문대, 사회대, 사범대의 건물 구분이 없었지만 사회대가 16동으로 독립하고 9~12동을 사범대, 15동을 법대가 사용하게 돼 혼란이 생겼다. 또 신축 건물이 생기면서 건물 수가 각 단과대에 배정된 번호를 초과했고 번호체계가 무질서해졌다. 관리과는 “관악캠퍼스 초기 구상 당시에는 캠퍼스 규모가 지금처럼 커질 줄 몰랐다”며 “이미 동 번호가 부여된 지 오래된 건물이 많아  동 번호 체계를 새로 구축하면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역계획을 통한 캠퍼스 개선

이러한 건물 배치와 동선의 복잡성을 줄이고 캠퍼스를 지역별로 특성화하기 위해 본부는 ‘캠퍼스 영역계획’을 만들었다. 캠퍼스 영역계획은 캠퍼스를 11개 영역으로 나눠 각 영역 내 건물과 주요 동선을 기호와 숫자를 사용해 구분하는 새로운 캠퍼스 분류체계다.


「서울대 캠퍼스부분 장기계획 2007-2011」에 따르면 캠퍼스 영역계획은 단순한 공간 분류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각 구역의 교통과 생활 거점을 중심으로 교통혼잡 문제나 보행자 안전 위험 정도, 주요 건물의 문제점 등을 고려하고 있다. 임승빈 교수(조경학과)는 “관악캠퍼스는 수목 관리는 잘 되고 있으나 1975년 조성돼 전체적으로 수목 조경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운동장 지하에 주차장 개발, 후문 근처에 중앙분리녹지 조성 등을 통해 보행자 위주의 캠퍼스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시된 표(오른쪽)와 같은 영역별 개발·개선 계획이 이뤄지고 있고 캠퍼스를 분류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상당수의 학내 구성원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정상호씨(교육학과·09)는 “학교를 1년 넘게 다니고 있지만 캠퍼스가 11개 영역으로 분류됐다는 것을 몰랐고 지리에도 익숙하지 않다”며 “영역별 개발을 홍보하고 특히 문화공간이 모인 캠퍼스 문화축 등을 활성화하면 학생들에게 더욱 편리한 캠퍼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본부는 “캠퍼스 영역계획을 통해 동 번호 체계의 무질서함을 극복하고 캠퍼스의 지역별  단점을 개선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홍보를 통해 학생들의 캠퍼스 활용 편의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캠퍼스가 넓어도 부족하기만 한 공간

서울대의 총 면적은 얼마나 될까. 관악캠퍼스, 연건캠퍼스, 각종 연습림과 수목원, 사업소의 총 면적을 합치면 192,298,919㎡로 거의 2억 제곱미터에 가깝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23배에 달하는 규모다. 학생들의 주요 활동 공간인 관악캠퍼스 부지는 100만㎡가 넘어 98만㎡인 서림동(신림2동)보다 넓은 상황이다. 건물 각 층의 넓이를 모두 더한 연면적을 따져봐도 관악캠퍼스 992,694㎡, 연건캠퍼스 135,535㎡로 이는 캠퍼스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하지만 학내에는 언제나 공간 부족에 대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과연 서울대의 부지와 공간은 부족한 것일까.

◇기준보다 많아도 편중된 교육 공간

실제로 관악캠퍼스와 연건캠퍼스의 교지 및 체육장은 각각 약 105만㎡, 10만㎡ 정도로 정부가 권장 기준으로 제시한 면적(약 70만㎡)의 150%를 웃도는 규모다. 건물의 경우에도 연면적이 기준 면적의 127% 가량 확보돼 기준보다는 넓은 실내공간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많은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학내 공간 부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동아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지만 건물 신축에는 한계가 있어 동아리방이 없는 동아리가 많다. 또 교양강좌 대부분이 83동, 43-1동 등의 멀티미디어 강의동에 편중돼 체감 공간은 더욱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교수들이 시설 때문에 멀티미디어 강의동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에 기초교육원은 단과대별로 강의 우선순위를 받아 교수들에게 강의실을 배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기초교육원은 “일부 멀티미디어강의동에서는 교양뿐 아니라 전공과목의 수업도 이뤄져 강의실이 가득 차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강의실 수 부족에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본부는 건축 가능한 캠퍼스의 남은 부지와 건물 리모델링·증축을 통해 공간 부족 문제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많지만 보존해야 하는 녹지

관악캠퍼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 중 상당 부분이 서울대 소유의 부지다. 그렇다면 이러한 녹지를 이용해 서울대의 공간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는 없는 것일까.

「서울대 캠퍼스부문 장기계획 2007~2011」에 따르면 서울대는 부지를 개발 정도에 따라  △개발지역 △전략개발지역 △유보지역 △절대보존지역 △보존녹지로 구분한다. 이 중 절대보존지역은 보존가치가 높고 시민 활용이 많은 녹지에 대해 향후 개발을 억제한 곳을 말한다. 보존녹지는 가급적 보존하되 지하공간 등을 이용해 녹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발이 허용되는 곳이다.

결국 현재 캠퍼스에서 추가적인 개발이 가능한 곳은 유보지역과 보존녹지다. 유보지역은 △순환도로의 서측 부지 △사범대와 버들골 사이 녹지 △신공학관 주변 주차장 부지 등이며 보존녹지로는 △정문 인근 녹지 △총장잔디와 주변 녹지 △교수회관 인근 녹지 등이 있다. 하지만 보존녹지의 경우 총장잔디와 아크로처럼 상징성이 있거나 중앙도서관 인근 녹지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개발을 할 경우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사실상 추가 개발이 불가능하다. 본부는 “캠퍼스 부지가 많아도 보존해야 하는 부분이 대부분이라 추가적인 개발에는 어려움이 많다”며 “이 때문에 제2캠퍼스 등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간계획 시스템에 문제점은 없을까?

관악캠퍼스가 최초로 생긴 1970년대에는 총 71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총 208동으로 증설돼 캠퍼스의 외양이 크게 변했다. 이처럼 공간 배정이나 시설, 건물 신축은 캠퍼스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학내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계획 단계에서부터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서울대의 건물 신축과 공간 개발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일까.


◇많은 논의 거쳐도 학생의견 반영은 부족해

교내의 신축, 리모델링, 증축 등의 기획은 대부분 기획처와 그 산하기구에서 이뤄지며 관리과, 기술과 등과의 협의를 통해 세부 사항과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수립된다.

대부분의 시설 신·증축은 총 13단계의 사업추진 절차를 거친다. 우선 시설 신·증축이 필요한 기관이 시설과, 기획처 등을 통해 사업 제안을 한다. 제안 이후 예산이 확보되면  ‘기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설이 캠퍼스의 동선과 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세부시설 조성계획을 변경하게 된다. 이 단계는 서울시의 승인을 거쳐 최종 완료되며 이후 설계용역 계약 등을 통해 시설이 착공된다.

한편 신규 시설이 구축될 때 이처럼 많은 검토, 계획 과정을 거치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단과대 등에서 시설 신축을 제안할 때 단과대 학생회를 통해 학생이 의사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기획위원회 심의 등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없어 건물의 위치 등을 결정할 때 학생들의 의견 반영은 어려운 상황이다. 단과대학생회연석회의 의장 준규씨(법학부·08)는 “총학생회가 구성된 이후 건물 신설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제도 마련과 의결권 획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본부는 “학생들은 단과대 행정실 등을 통해 충분히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며 “사업추진 절차는 굉장히 전문성을 요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실무에 참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대학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현재 서울대는 「2007~2025 장기발전계획」을 바탕으로 5년마다 캠퍼스부문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하지만 5년마다 수립되는 장기계획은 하위 부문별 계획을 체계적으로 조율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캠퍼스 계획을 전담하는 정규 부처가 없는 서울대와는 달리 미국 버클리대와 하버드대는 시설자산의 계획, 집행과 관리, 운영을 모두 전문 부처에서 전담하고 있다. 또 본부에 계획과와 부동산과를 설치해 캠퍼스 부지와 자산관리를 전담하게 하고 있다.

또 이들 대학에서는 10년 이상의 캠퍼스 부문 장기 마스터플랜을 바탕으로 캠퍼스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버클리대는 캠퍼스 관련 계획을 부문별로 세분화해 각각의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부문별 관리계획은 △조경 마스터플랜 △역사경관 계획 △자전거 계획 등의 다양한 위계를 가진 것으로 장기 마스터플랜에서 세부적으로 조정하지 못한 사항들을 심층적으로 계획한다.

이뿐 아니라 외국 대학에서는 캠퍼스 디자인 전담 부서와 전문가가 있어 새로운 캠퍼스 구성이 용이하다. 미국 UC샌디에고대와 콜로라도보울더대는 캠퍼스 건축가와 계획 전문가를 고용해 캠퍼스 공간 시설계획뿐 아니라 캠퍼스 디자인계획·관리도 전담하고 있다.

서울대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총장 산하기구로 ‘캠퍼스기획단’이 구성된 상태다. 기획처는 “서울대는 캠퍼스기획단과 시설기획팀 등의 여러 부처에서 캠퍼스 관련 사업을 조율하고 있다”며 “해외사례 분석을 통해 서울대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도입해 멀티캠퍼스 등 캠퍼스 계획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