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성탄을 앞두고 날씨가 풀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아침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 오후 세 시쯤. 식당에서 일하는 한 아주머니가 음식을 배달하러 빌라 건물에 들어갔다가 복도 바닥에서 얇은 면포로 싸여 있는 ‘물체’를 발견했다. 살짝 들춰 본 면포 속에는 갓난 남자아이가 있었다. 양수도 닦아내지 못한 듯 아이의 온몸은 젖어 있었고 출산 때 묻은 듯한 핏자국도 남아있었다.

놀란 아주머니는 건물 밖으로 뛰쳐나와 지나가던 한 청년을 붙잡았다. 아기가, 갓난아기가 버려져 있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를 따라온 청년이 만져본 아이의 몸은 차가웠다. 한겨울 얼음장 같은 복도 바닥에 얇은 천하나만 둘러싼 아기의 몸은 추위에 얼어있었다. 청년은 급한 대로 겉옷을 벗어 아이를 감쌌다. 아주머니와 청년은 빌라 주인집 문을 두드렸다. 빌라에 살던 아저씨는 집안에 있던 담요를 가지고 뛰쳐나왔다. 파르르 떨리는 작은 생명을 감싼 아주머니와 청년과 아저씨는 병원으로 함께 달려갔다.

저체온증과 신생아 패혈증이 의심됐다. 응급치료가 시작됐다. 의사는 다행히 고비는 넘겼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치료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직원들이 모은 기금으로 치료비를 충당키로 했다. 성탄 전날 서울 외곽의 한 어두침침한 복도 바닥에서 처음으로 세상을 만나야 했던 아기는 이웃의 아주머니와 청년과 아저씨와 의사의 손길로 꺼져가던 생명을 다시 살릴 수 있었다. 부모도 연고도 알지 못한 채 성탄 전야에 태어난 아기는 ‘성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며칠 전 성탄이는 새 부모를 맞이했다. 소식을 들은 한 부부가 입양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새 부모는 너무 기쁘고 설렌다고 했다. 성탄이가 자신들을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도록 잘 키우고 싶다고 했다. 100일을 맞는 성탄이도 웃는 듯했다.

국내에서 한 해에 5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유기되고 있다. 서울의 한 보육시설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생후 일주일 안에 버려졌다. 이 아이들은 허름한 화장실에서, 비닐봉지에 담겨 쓰레기통에서, 낡은 건물 계단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보육사들은 “좀 더 많이 안아달라고 보채는 것 외에는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귀여운 아이들”이라고 전한다.

뉴스를 통해 성탄이의 입양 소식을 들으며 잘 됐다고, 다행이라고 되뇌다가 문득 궁금해진다. 성탄절에 음침한 복도에서 홀로 아이를 낳았던 엄마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그 엄마는 성탄이의 입양소식을 알리는 뉴스를 지금 보고 있을지, 그 엄마는 지금 얼마나 울고 있을지. 또 궁금하다. 성탄이의 아빠는 이 소식을 들었을지, 아니 자신을 닮은 한 생명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과연 알기나 할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음침한 건물 후미 차가운 바닥에서 소중한 새 생명이 소리없이 울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웃의 아주머니와 청년과 아저씨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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