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진단]

높은 고료에도 응모작 수준 제자리걸음
고료에 집착하기보다 문단과 독자의 주목 끌 수 있는 차별성 모색해야

최근 몇 년 새 억대의 고료를 내건 ‘고액 문학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국내 문학상에 일대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우수 작품 발굴을 기대하며 야심차게 출발한 고액문학상 운영에 제동이 걸렸다. 수준 이하의 응모작이 몰려 수상작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높은 고료에 걸맞은 성과를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근 높은 고료를 내세운 문학상들이 넘쳐남에도 이상문학상 등 몇몇을 제외하면 문학상 전반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적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문학상이 우리나라 문학의 수준과 경향을 보여주는 척도로 여겨져 매회 당선작이 독자와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에 비해 현재 문학상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이름만 거창한 고액문학상들, 이것이 우리나라 문학상의 현주소다.


‘장편소설 대망론’ 등 고액 문학상 제정 움직임

2000년대 후반 고액 문학상들이 속속 생겨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문단의 장편소설 활성화 움직임을 꼽을 수 있다. 신춘문예나 전통적 문학상의 대상이 중·단편에만 치우치면서 사실상 대중과 더욱 깊게 호흡하는 장편소설이 위축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계간지 등 문단을 중심으로 나왔고 이에 장편소설 부흥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문학동네 류보선 편집위원은 “순수문학을 다루는 문단이 장편소설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장편소설 대상의 문학상들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고액문학상에는 1억원 고료의 세계문학상과 중앙장편문학상, 5천만원 고료의 한겨레 문학상 등이 있다.

한편 여러 장르에 걸친 문화콘텐츠 발굴을 목표로 내건 문학상들의 등장도 두드러졌다. 김기태 출판평론가는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 즉 문학을 하나의 원천으로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용하자는 취지로 다수의 문학상이 제정됐다”고 밝혔다. 멀티 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영화 콘텐츠 대전 문학상 등이 대표적 예다. 특히 멀티 문학상은 문학계 인사뿐만 아니라 방송 PD, 영화감독도 심사위원으로 포섭해 문학을 영상매체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처럼 ‘문단의 장편소설 활성화 움직임’과 ‘문화콘텐츠 개발 욕구’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일자 상당수 문학상은 세간의 주목을 끌고자 자연스럽게 ‘높은 고료’라는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주로 신설된 문학상들은 대부분 1억원대 고료를 제시하고 있고 기존 문학상들도 덩달아 고료를 높이는 추세다. 이에 2008년 한겨레문학상도 3천만원의 고료를 5천만원으로 인상한 바 있다.


고액의 고료에도 제대로 된 응모작 나오지 않아

그러나 상당수 고액문학상은 신설 당시의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당선작조차 내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 2008년 문학동네 작가상과 소설상, 창비신인문학상 등은 모두 응모작이 수준 이하라는 이유로 당선작을 뽑지 않았다. 또 같은 해 월간지 ‘문학사상’은 문학상 사상 최대 금액인 1억 5천만원의 고료를 내걸고 ‘장편소설상’을 공모했지만 결국 수상작을 내지 못하고 잠정 중단됐다. 순수문학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뿐 아니라 장르적 요소가 강한 ‘중간문학’을 공모한 고액문학상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뉴웨이브 문학상은 칙릿(Chick Lit), 팩션(faction)소설 등 장르적 요소를 차용하며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중간문학’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신설됐지만 지난해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조선일보 문학부 김태훈 기자는 “응모작이 판타지 등 특정 장르에만 편중돼 우수작이 나오지 않아 현재 응모대상 범위를 장편소설 전체로 확대했다”며 애초 취지가 흐려질 수밖에 없었음을 토로했다.

고액문학상의 등장에도 고료에 걸맞은 좋은 작품이 문학상에 모여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성 평론가와 작가 중심의 문단이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장편소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응모작 수준 저하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있다. 대다수 장편집필 경험이 없는 신인작가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아 역효과가 났다는 것이다. 류보선 편집위원은 “단편에서 충분히 훈련을 받아야 좋은 장편이 나올 수 있는데 최근 문단에서 신인작가들에게 장편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순수문학 대상의 문학상뿐 아니라 문화콘텐츠 발굴을 목표로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키우고자 하는 문학상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문학상 수상작은 문학성이 떨어져 독자와 평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문학을 다양한 매체로 활용하는 시도는 참신했지만 실제로 좋은 작품을 발굴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기태 출판평론가는 “문학에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가미될수록 독자들이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며 상업적 측면을 강조하는 문학상은 태생적으로 작품성을 담보할 수 없음을 꼬집었다. 


문학상마다 차별성 있는 심사제도 필요해

이처럼 한국의 ‘고액’ 문학상이 여러 암초에 부딪힌 것과 달리 일본, 프랑스 등 외국 유수 문학상들 가운데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상들이 많다. 굳이 고액 고료를 내세우지 않고도 우수작품 발굴 목적에 충실하며 꾸준히 대중과 평단의 주목을 받는 것이다. 프랑스의 공쿠르상은 고료가 아예 없지만 노벨문학상 못지않은 세계적 명성을 자랑한다. 또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두 상인 나오키상과 아쿠타가와상은 각각 신인 작가와 중견 작가에게 시상하는 데 고료는 100만엔(약 1200만원)이지만 당선작이 10만 부 안팎으로 팔려나가는 등 ‘흥행보증수표’로 인정받으며 문학상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렇듯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상 외에도 비록 역사는 짧지만 독특한 개성을 살려 독자의 주목을 받는 문학상들도 많다. 일본의 전국 서점직원이 직접 뽑는 ‘서점대상’, 혹은 출판사 직원이 뽑는 ‘포프라샤 소설 대상’ 등은 파격적인 심사제도를 운영하면서 매회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독특한 특색을 자랑하는 외국 문학상과 비교할 때 국내 문학상의 근본적인 문제로 천편일률적인 심사제도가 지목되고 있다. 국내 고액문학상은 신설 문학상조차도 심사위원 구성이 기성 평론가나 작가에 한정되는 등 심사제도가 차별성 없이 운영되는 사례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문학사상’의 강성욱 잡지 팀장은 “신설된 문학상들의 심사기준이 비슷한 탓에 같은 작품이 여러 문학상의 응모작으로 돌고 도는 등 문학상들이 좋은 작품 발굴에 더욱 어려움을 겪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고액문학상은 높은 고료를 내세우기보다 각각의 차별화에 성공할 때 독특한 개성과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액문학상이 한국의 ‘노벨문학상’으로 성장해 최근 한국문학에서 멀어진 독자들을 다시 문학 앞으로 불러 모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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