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발표하는 학부생들]

SCI, SCIE급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 올리는 학부생들 눈에 띄게 늘어
교과부는 물론 각 대학에서도 학부생연구지원 프로그램 마련

대학사회와 학문영역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던 ‘학력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석·박사과정부터 본격적인 연구의 시작’ 혹은 ‘대학원생이 돼야 큰 논문을 쓸 수 있다’는 통념을 무색게 하는 학부생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또 최근 도입된 학부생 연구지원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며 학부생들의 연구 열의를 뒷받침해 주목받고 있다.


연구의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거듭난 학부생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학회인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의 SCI급 공식학술지 2월호에 발표된 논문에 한 한국 학부생이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 주인공은 올해 8월 졸업을 앞둔 김동원(영남대 정보통신공학과·01)씨다. 그의 졸업논문 「사용자 간의 협업을 통한 해킹 방지 방안」은 ‘사용자 간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인정돼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리게 됐다. 김동원씨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실험이라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다”며 “통신·네트워크 분야에서 학부생의 논문이 인정받는 경우가 드문데 욕심 없이 열심히 한 실험에서 좋은 성과를 내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학부생이 쓴 연구 논문 중 더욱 이목을 끄는 것은 학부생이 제2저자 혹은 공동저자가 아닌 제1저자로 참여한 논문들이다. 석·박사과정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연구 경험이 부족한 학부생이 연구를 주도하고 논문 완성에 가장 많은 이바지를 해 제1저자로 SCI급 주요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건국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진학한 고유나씨와 김정현씨는 학부생으로 논문의 제1저자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학부기간 동안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재료 등 전자재료 분야를 연구하면서 지난 2월호에 게재된 논문까지 합해 20편이 넘는 SCI논문을 게재했다. 그 중 각각 5편과 3편이 공동저자가 아닌 주저자로 출간한 논문들이다.

장욱주(영남대 생명공학부·07)씨도 제1저자로 참여한 논문 「과당의 노화 촉진 메커니즘」을 지난 1월 국제 저널인 『BBRC-생화학·생물리학 연구회보』에 게재했다. 장욱주씨의 지도교수인 조경현 교수(영남대 생명공학부)의 연구실에서는 2008년에도 학부생이 SCI급 논문 등재에 성공해 연구 성과를 인정받은 적이 있다. 그 주인공인 박기훈씨(영남대 생명공학부 석·박사 통합과정)는 생명공학부 4학년에 재학하던 당시 국제학술지인 비교생화학생리학지에 논문을 올렸다. 두 학생을 지도한 조 교수는 “나는 실험디자인을 제공해주고 논문이 시의에 맞을 수 있도록 조정해 준 것뿐”이라며 “학생들의 실험 기여도가 제1저자로 실릴 정도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연구 열기는 대학 학부생을 넘어 고등학교까지 퍼져 나가기도 한다. 대일외국어고등학교의 김규광씨는 ‘과학고등학교 학생이 아닌 외국어고등학교 학생은 과학 논문을 쓰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지난 9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으로 인한 염증 반응에 관련된 단백질 네트워크 연구」라는 논문을 SCIE급 저널인 ‘세계 소화기병학 저널(World Journal of Gastroenterology)’에 발표한 바 있다. SCIE는 SCI의 확장판으로 SCIE급 저널은 상대적으로 피인용 횟수(Impact Factor)의 반영이 적지만 분명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학부생 연구 동기 부여하는 각종 프로그램 활성화

최근 늘어나는 학부생 연구 지원프로그램은 이러한 학부생 연구의 촉매제라 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관하는 URP(Undergraduate Research Program)는 학부생연구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사례다. 대학생이 주도하는 연구를 지원하고자 2008년 3월 처음 도입된 이 프로그램은 현재 학부생들에게 150가지의 과제를 지원하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URP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몇몇 사례들 가운데에는 박기훈씨와 장욱주씨의 논문도 포함돼 있다. 박기훈씨는 “지원을 받으면서 금전적인 여유가 생긴 점도 좋았지만 나의 연구주제가 선정됐다는 점은 실험에 대한 의욕을 높여줬다”며 “연구 지원 프로그램은 연구에 관심 있는 다른 학부생들에게도 참여 동기를 심어줄 것”이라며 URP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주로 이공계 학부생 연구지원에 치우쳐 있는 반면 각 대학에서는 인문·사회계열 학생들까지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경희대는 지난 18일부터 ‘교수-학생 협동 학술 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학부 재학생들과 교수로 구성된 10개의 연구그룹을 선출해 지원하며 연구실적이 우수할 경우 장려금도 지원한다.

서울대 역시  학부생 연구 지원프로그램을 만들어 학부생들의 연구활동 지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학생자율프로그램은 학생자율연구1·2, 학생자율세미나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자율연구는 1~2명의 학생이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하는 것으로 1을 이수한 후 2를 추가로 이수할 수 있다. ‘학생자율연구2’에 참여하고 있는 이문섭(경제학부·04)씨는 “‘학생자율연구1’에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보충하고 ‘학생자율연구2’를 통해 실제  연구결과물을 내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국제저널에 수록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어 영어로 논문을 쓰고 있으며 학부 과정에서 소중한 연구경험을 쌓는 것 같아서 좋다”고 밝혔다. 학생자율연구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기초교육원에서는 결과물에 대한 포스터 섹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포스터 섹션은 학회나 심포지엄에서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판넬 두 장 정도에 연구내용을 담아 발표하는 것이다. 또 기초교육원에서는 연구가 지속돼 논문이 누적되면 ‘SNU저널’의 출간도 염두에 두고 있다. 담당교수인 김지현 교수(기초교육원 연구부)는 “아직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학부생이 주도한 연구 논문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는 학부생의 논문으로 구성된 저널의 창간도 생각하고 있다”며 “좀 더 많은 학생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학생자율연구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혀, 서울대 학부생들의 논문 작성과 발표 기회가 더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학교에서도 입시에 초점을 둔 수동적 공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많은 학부생에게 학부생들의 연구논문은 ‘능동적 연구’에 대한 자각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학부생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까지 늘어나는 지금 학부과정에서의 연구 문화가 널리 정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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