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동향] 모험 연구가 두렵지 않은 시대

연구자들의 자발적·창의적 도전에 긍정적 영향
선진국형 연구풍토 정착 기대… 사업 초기라 미비한 점도 지적돼

삽화: 유다예 기자  dada@snu.kr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저위험 저수익(Low Risk Low Return)’. 그간 정부는 기초 과학연구 분야에서 두 가지 투자전략 중 후자를 택해 위험부담이 적은 연구를 중점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런데 올해 초 정부 부처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실패 위험이 큰 모험적 연구를 독려하는 정책을 앞다퉈 발표해 학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달 ‘지식경제 연구개발 혁신전략’을 발표한 지식경제부는 1일(목)부터 관련 장관 고시와 내부지침을 시행했다. 이중 ‘성실실패 용인제도’는 연구 실적이 저조해도 연구 과정이 성실하면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로 1월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가 발표한 ‘2010년도 R&D·인력양성 종합시행계획(종합시행계획)’에도 등장한 바 있다. 당시 교과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박찬모 이사장은 “창의적·도전적 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며 실패 위험이 큰 미개척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과감히 도전하라고 당부했다. 덕분에 R&D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12.7% 늘어난 4조 3,932억원이 책정됐다.

성실실패 용인제도는 교과부가 추진 중인 ‘미래유망 파이오니어(Pioneer) 사업’과 ‘모험연구 지원사업’에 적용된다. 혁신적 연구과제를 공모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두 사업의 성패는 연구자들의 자발적 도전과 독창성에 달렸다. 따라서 교과부는 연구자들의 부담을 덜고자 기존에 시행하던 연차별 평가를 단계적 평가로 대체했다. 연차별 평가를 시행하면 매년 논문 등의 가시적 성과를 제출해야 하지만 미래유망 파이오니어 사업에서 실시되는 단계적 평가는 3년에 한 번씩 이뤄져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미래유망 파이오니어 사업은 광전변환 신기술 개발, 지능형 신경 소자 개발 등의 과제를 선정해 작년부터 진행 중이며 모험연구 지원사업은 현재 사업과제 접수를 마쳤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올해부터 자체연구지원사업인 ‘드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계산과학, 태양전지 제조기술 등 선정된 10개 과제에는 첫해에 5천만원이, 두 번째 해에 1억 5천만원이 개별적으로 지원된다. 특히 기존 지원 범위는 선임급 이상 연구원의 과제에 국한됐지만 이번엔 일반 연구원의 아이디어도 지원 대상으로 인정돼 눈길을 끈다. 계산과학센터 김찬수 연구원은 “창의성과 독창성이 선정기준인 만큼 일반 연구원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며 드림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렇듯 모험적 연구의 장려는 선진국형 연구 풍토를 조성하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교과부 연구정책과 강정자 사무관은 “선진국에서는 성과에 매달리지 않고 비교적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연구 성과의 책임성이 지나치게 강조돼왔다”고 지적한다. 그간 과학계에서 연구자들이 단기적·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 유리한 ‘저위험 추격형(Low Risk, Fast Return)’ 연구에 집착해온 이유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의 시행으로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학기술원 연구계약팀 강선준 박사는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정책을 통해 단시간에 세계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 사업이 올해 처음 시작된 ‘모험’인 만큼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교과부 박항식 기초연구정책관은 “모험연구가 처음 도입돼 시행 과정에서 서투른 점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과부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모두 과제 선정에서 의견 불일치로 난항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관계자는 “달라진 심사 기준에 연구원과 심사위원 간 이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 사업의 세부 계획이 시행단계에서 본 취지와 달라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연과학연구소 이상철 연수연구원은 “실제로 평가를 할 때 여전히 특허 건수나 기술이전 건수 등 가시적 성과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 사업과의 차별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시욱 교수(조선대 환경공학과)는 실제로 지원되는 예산이 계획된 것보다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애초 12~15억 원이었던 지원비가 실제로는 7~10억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위험을 무릅쓰고 야심차게 추진한 ‘모험’은 과연 연구자들의 창의적 연구를 성공적으로 북돋울 수 있을까. 사업 시행 초기에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교과부 측은 “현재 시행되는 사업은 발아 단계”라며 “미비한 점은 사업 진행 과정에서 개선해나갈 것”이라 밝혔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모험적 연구 사업은 아직 서투르지만 혁신적·창의적 연구 풍토 조성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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