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 개편]

안전성평가연구소 사상 첫 민영화
출연연 개편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통·폐합 등 구조조정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화) 안전성평가연구소(KIT)에 출연연 역사상 처음으로 민영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지식경제부(지경부)와 산업기술연구회가 외부 용역업체에 의뢰해 내놓은 출연연 개편방안은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안을 포함해 출연연 13곳의 구조개편안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번 민영화 결정이 출연연 전반의 민영화 및 통·폐합의 첫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신약 및 화학물질 독성평가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근접한 기술을 보유한 국내 유일의 전임상시험대행 출연연으로 설립 당시 천억원대의 정부예산이 투입됐다. 그러나 상위 기관인 산업기술연구회의 이사회 측은 4월 안으로 안전성평가연구소 인수기업을 결정하고 매각이 무산되면 연구소기업형태나 민간경영방식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안전성평가연구소 노조 측은 소장을 제외한 보직자 전원이 사임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봉재 안전성평가연구소 노조 투쟁위 위원장은 “이사회 측이 공청회 등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졸속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기관 중 연구 인력이 200여 명으로 가장 적고 ‘부설기관’의 성격을 지녀 출연연 구조개편의 첫 시험타가 된 것으로 해석한다. 전국연구노동조합(전국연구노조)은 지난달 26일 성명서에서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민영화는 전체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민영화 및 통·폐합 추진의 시작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1월 보고서 구조개편안 중 하나였던 안전성평가연구소의 민영화가 현실화된 이상 보고서에 명시된 다른 출연연 역시 구조개편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전자통신연구원, 에너지기술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등 3곳은 통합되고 기계연구원 등 4곳은 통합 또는 민영화한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겨 있다. 

그러나 출연연 구조개편이 단기간에 무리하게 진행될 때 ‘국가적, 범부처적 연구개발’이라는 출연연 본연의 임무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가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는 사례라고 본다. 먼저 민영화 이후 기업 이윤추구 논리에 따라 연구소가 운영되면 안전성 평가기술 연구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 한국독성학회 정진호 회장은 “독성평가기술 등은 국민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공공기술이기 때문에 안정적 국가 지원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민영화로 정부의 장기적 지원이 끊긴다면 국내 안전성평가기술이 세계적 기술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결국 국내산업용 기술로 전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에 따라 신약·신물질 개발 등 신성장동력 산업에도 적신호가 켜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섭 안전성평가연구소 전 소장은 “국내 신약개발 회사들이 안전성평가의 모든 과정을 거치려면 외국 회사에 용역을 의뢰해야 하는데 이는 외화유출 등 비용적 손실뿐 아니라 결국 신약개발 경쟁력도 저하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말했다.

전면적 출연연 구조개편안에서 민영화만이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기술연구회는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에서 ‘시험인증’ 기능만 민간에 매각하고 기술경쟁력과 직결되는 ‘연구기술’ 분야는 한국화학연구원으로 이전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화학연구원의 인력구조를 볼 때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개발이 원활히 진행될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상섭 전 소장은 기존 출연연 구조를 유지하면서 점차 자율성을 획득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일본 안전성평가연구소는 40여 년 전 설립됐지만 출연연 형태로 존속하면서 정부 지원금을 10%까지 줄이는 방식으로 경영 효율성을 높여왔다”며 “우리나라 안전성평가연구소도 정부 지원금을 점차 줄이면서 출연연 형태로 남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첨예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안전성평가연구소는 4월 안에 최종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술 융·복합 추세 등으로 출연연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변화해 연구기관 통·폐합 등 기존 지배구조 개편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출연연은 가시적 성과가 쉽사리 나오지 않는 지난한 연구과정을 걸어왔다. 이와 같은 공공연구의 가치와 특성을 고려해 신중한 구조개편안이 마련돼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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