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아시아의 지식인 - 이마니시 긴지

변이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
‘종(種) 사회’ 개념 제시해 다윈 진화론 비판

이마니시 긴지는 ‘이마니시(今西) 학파’의 창시자로 그의 집단이 서양 마르크스 학파와 쌍벽을 이룬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일본학계의 거물이다. 그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학자는 현재까지 자연·인문·사회과학의 여러 영역에 이른다. 만년에 그는 ‘자연학’을 제창했는데 이것은 곤충학에서 시작해 생태학, 생물사회학, 영장류학, 인류학을 포함하며 산악학에까지 이른다.

1859년 『종(種)의 기원』의 출간 이래 개체 간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 핵심인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1930년대 종합설이 탄생한 이후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구미세계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이론으로서 진화생물학계에 군림해왔다. 그러나 이마니시는 일찍이 1940년대 초부터 일관되게 다윈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진화 메커니즘, ‘수미와케론(棲み分け論)’을 제창했다. 그에 의하면 생물은 종 단위로 서식지역 분할(habitat segregation) 상태에서 평화 공존한다. 이마니시는 이를 ‘종(種)사회(species-society)’라고 이름 붙였는데 생물세계는 이 같이 공존하는 다수의 종사회로 구성돼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사회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는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가? 환경의 변화는 종사회가 모여 이루어진 전체사회에 변화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전체 사회를 구성하는 종사회는 새로운 환경으로 떨어져나와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종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 역시 개체의 입장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변해야 한다. 모든 개체가 능동적으로 변화를 일으킬 때 진화, 즉 신종 탄생은 이뤄진다. 생물이 종을 단위로 해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 분할하는 과정에서 진화가 이뤄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마니시가 지적하는 다윈 진화론의 난점은, 개체수준에서 단발로 혹은 무작위로 출현한 돌연변이는 마침내 인구 속에 묻혀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마니시는  진화를 위해서는 동시다발적인 돌연변이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윈에 의하면, 환경과 전혀 관계없이 우연히 변이가 일어나지만 이마니시에 의하면 환경 변화에 대응해 하나의 종사회 내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방향성 있는 돌연변이가 나타난다. 그래서 다윈이 말하는 진화를 위한 개체 간의 생존경쟁은 있을 수 없다고 이마니시는 못박는다.

상이한 문화권을 대표하는 두 진화론은 이마니시의 유기체적인 사고와 다윈의 기계론적 사고의 결과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다윈이 생물의 진화를 가져오는 것은 생물이 아니라 자연선택이라 한 것에 대해 이마니시는 철저히 기계론화된 진화설이라 비판하며 자신의 진화설에서는 생물에 능동성을 부여한다. 생물의 종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그 자신이 의식(consciousness)을 가진다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다수로부터 비판의 표적이 된다. 그러나 최신 학설로서 각광받는 ‘가이아 이론’은 심지어 지구라는 존재까지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며 그것에 일종의 의식 내지는 주체성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이마니시 이론에 대한 구미학계의 반응은 어떠한가. 1985년 10월호  『Nature』에서 최초로 이론이 소개된 것을 시작으로 1986년 4월부터 1987년 3월 사이에 총 9편의 논문과 단신이  『Nature』에 게재되면서 이마니시의 진화론을 둘러싼 열띤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그의 이론은 여기서 과학성 테스트를 훌륭히 견뎌냈다.

‘20세기 진화학계 최대의 성과’라고 평하고 싶은 1970년대 초 제창된 굴드(S. Gould)의 단속 평형설은, 화석기록 관찰에 의존하면서 진화가 종을 단위로 야기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또 최근의 분자생물학은 새로운 종의 출현이라는 진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단발적 돌연변이보다는 다발적 돌연변이가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이마니시의 다발설을 지지하고 있다. 


이성규 박사
前 과학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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