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소비자로서의 시민에게
연구 성과 이해시키기 어려워
연구비 분배하는 정부가 나서
시민과의 소통공간 만들어야

곽철정
생명과학부 석서과정
영국 신경과학회에서 주최하는 전시회에 도우미로 참여한 적이 있다. 내가 맡은 일은 사람 뇌 모형을 설명해주는 일이었다. 한 아주머니께 이것저것 한참 설명을 해드리고 있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대뜸 물으셨다. “그래서 머리가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두뇌를 연구하는 사람이지, 머리가 좋아지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걱정이 들었다. 만약 아주머니가 ‘내가 낸 세금으로 너희들은 연구비를 받고 있는데 그게 나에게 어떤 이득이 되느냐’고 물으면 나는 과연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과학 활동의 결과가 직접적인 이익 창출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많은 경우, 연구는 국가의 지원에 의해 유지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과학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 활동의 최종 소비자는 연구비를 책정하는 공무원들이 아니다. 세금을 내는 시민들이다. 과학이 시민들에게 소비된다는 것은 과학자의 연구 성과가 시민들에게 이해되고, 연구 성과를 두고 과학자와 시민들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과학은 시민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아직도 많은 시민에게 과학은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만들어 내거나 혹은 과학자란 자신들이 알 수 없는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괴짜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세금으로 연구비를 대면서도, 과학자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연구를 진행하는데도 둘 사이에 놓인 벽은 높다. 시민들은 과학이 어렵다고 여기고 과학자들은 시민들이 자신의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단정짓는다.

지금의 과학은 너무 어렵다. 심지어 과학자들마저도 옆 연구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과학자 개인의 노력으로 자신의 연구를 다수의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너무 벅찬 일이다. 한 시민이 개인적으로 과학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과학에 대해 알기엔 분야도 너무 많고 논문을 읽어도 이해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자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아쉬운 것은 연구비를 지원받아야 하는 과학자들이다. 자신이 수행하는 연구의 가치를 몰라주는 세상, 『Science』, 『Cell』, 『Nature』 등의 유명 과학 잡지에 실리는 연구만을 지원하는 더러운 세상을 탓하기 전에 과학자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 자기 연구가 시민들의 세금에 의해 수행될 만한 가치가 있음을 나서서 알려야 한다. 누구에게? 연구비를 책정하는 공무원이 아닌 세금을 내는 시민들에게.

하지만 이러한 일은 과학자 개인이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민들과 과학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와 시민들의 소통이 부재한 상황에서 결국 시민들의 관심은, 결국 세금을 통해 책정되는 연구비는 자극적이고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몇몇 연구들에만 집중될 뿐이다. 이러한 소통 공간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과학자뿐만 아니라 연구비 분배를 수행하는 정부가 함께 나서 적극적으로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science interpreter’라는 인력을 양성하면서까지 과학자들과 시민들 사이의 소통에 힘쓰고 있다.

다수의 시민들이 과학자들의 연구에 관심이 있는 나라. 시민들에게 자신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설명할 자세가 되어 있는 과학자들이 있는 나라. 그리고 정부가 나서 시민과 과학자 사이의 소통을 도와주는 나라. 이런 나라라면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과학 활동이 조금은 시민들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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