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대학원의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가장 큰 사건은 미국 록펠러재단의 지원을 받아 1970년 단독건물을 건립한 일일 것이다. 10년간의 셋방살이 신세에서 벗어나 내 집 마련의 쾌거를 이룬 셈이고 게다가 현대적 개념을 도입해 부러움을 한 몸에 안기도 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관악캠퍼스에는 초현대적 건축물이 빼곡히 들어서 글로벌 시대, 국제화 시대의 서울대의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는 동안 우리 보건대학원은 교내 최고연륜을 자랑하는 을씨년스런 시멘트 문화의 역사 속에 비 새고 무너져가며 누옥이 되는 소외감 속에 살아왔다. 방문객들의 남 건강 생각 말고 이제 너 자신의 건강이나 챙기라고 충고해도 그래도 지하철 이용이 아주 편하다는 사실 단 하나를 위로삼으며 참 씁쓸한 세월을 보내왔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연건의 모퉁이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참으로 기적처럼 내공을 쌓아왔다. 관악의 신축건물로 이전한 소감 한 마디를 한다면 새 집이 좋더라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찔끔 예산이라는 허무개그를 벗어나 급피치가 걸린 작년의 건축 완공은 한 마디로 깜짝쇼였고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보건대학원의 관악 이전은 두 가지 큰 의미를 갖는다. 새집 증후군에 시달리더라도 헌 집 살이 때보다는 훨씬 정신적인 건강효과가 크더라는 경험이 하나요, 다음은 변방에서 맴돌듯 하던 보건학이 이제 관악에서의 위상을 제대로 찾을 계기를 얻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보건대학원 교수라고 하면 한결같이 의사냐고 묻는다. 이렇듯 보건학은 의학 속의 한 분야처럼 이해돼 왔다. 현대사회는 복지와 안녕사회다. 보건학은 치료 중심의 의과학이 아니라 지역사회 집단, 국민, 나아가서는 세계인류의 건강과 복지, 안녕문제를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는 보건학이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진 학문이라는 표현도 한다. 또한 인접 학문과의 연계발전은 향후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보건학이야말로 다학제 간 연구를 필요로 하며 다양한 인재를 필요로 한다. 통섭의 시대에 걸맞은 학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자체적으로 충분한 역량을 쌓아온 보건대학원이 관악으로 물리적으로 접근하면서 이처럼 할 일이 많아졌다.
연구실의 전망이 매우 좋다. 내려다보이는 관악의 캠퍼스에 봄 색깔이 확연하게 보인다. 좋은 전망 속에 보건대학원에 봄이 찾아들고 있다. 문득 생각나 창 너머로 찾아본다. 연주암이 어디지? 날씨가 풀리면 올라가 봐야겠다.
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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