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마주침을 준비하며

처음에는 '그저 아주 가벼웠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군에서 제대한 후 무기력감 속에서 미래를 저울질하고 있을 때, 문득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대학원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치밀한 계획과 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저 불현듯 떠오른 치기때문이었다. 처음이 가벼웠기 때문이었을까. 막상 들어온 대학원에서의 생활은 나의 가벼움으로 부딪치기에는 녹록치 않았다. 수업과 세미나의 내용을 소화하기에는 나의 앎은 너무나 일천했고, 매일 더해가는 읽어야 할 텍스트의 양을 따라잡기에 너무나 벅찼다. 첫 학기 내내 '가벼운 선택'을 자책하기도 많이 했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좌절도 많이 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어서, 어느덧 부끄럽게나마 논문도 썼고, 2년여 전의 그날처럼 정리하고 계획해야 할 새로운 시점 위에 서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대학원 생활을 '마주침'의 연속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많은 마주침들이 있었다. 관악이라는 공간과 새로운 동료들, 그리고 수많은 사유들과 나는 지난 2년동안 마주쳤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마주침들이 항상 새로운 실존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듯,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마주침들의 의미도 각기 달랐다. 그 가운데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마주침은 '마르크스'와의 만남이었다. 무기력했던 첫 학기를 마치고 『자본』 세미나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 만남은 단지 하나의 우연일 뿐이었다. 그러나 원자들의 우연한 마주침들이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것처럼, 1년 후 『자본』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에게 마르크스는 더 이상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우연들 중 하나일 수만은 없었다.


마르크스와의 마주침을 통해 나의 대학원 생활은 비로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었던 것 같다. 논문을 쓰면서, 그리고 현재까지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본다. 아직 답을 구하지 못한 이 질문에서, 그것이 단순히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적 관점을 채택한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라고 다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현재의 나는 적어도 2년 전의 나처럼 그렇게 '가볍지'는 않은 것 같다. '마르크스주의'라는 좋은, 그리고 훌륭한 무게추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모자란 나의 무게감을 새삼 느끼면서, 이를 보태줄 새로운 '마주침'들을 준비하고 있다.

박찬종
사회학과ㆍ석사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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