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성악가 바리톤 김동규씨

‘하하’하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바리톤의 깊은 울림이 라디오 부스 안을 채운다. 어렵다고 피해왔던 베르디, 푸치니의 오페라도 그의 재미있는 해설이 곁들여지면 어느새 드라마의 한 장면이 연상되고, 복잡하게 느껴지던 클래식도 그가 바리톤 음색으로 차근히 설명해줄 때면 쉬운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 매력적인 저음의 주인공은 세계적 성악가이자   CBS FM ‘아름다운 당신에게’의 DJ이기도 한 김동규씨다. 부서지는 햇살에 눈이 부신 4월의 마지막 날, CBS 방송국에서 방금 방송을 마치고 나온 김동규씨를 만났다.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복장을 한 그의 인상은 그가 라디오를 진행하는 분위기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최초로 세계무대에 한국 성악가, 바리톤 김동규

그가 성악을 시작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작곡가, 성악가였던 그의 집은 항상 클래식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성악은 그에게 자연스런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연세대 성악과 재학시절을 원 없이 성악공부에 집중했던 때로 추억한다. “1학년, 2학년 때는 갑자기 바뀐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 조금 방황했지만 그 뒤 열정적으로 성악을 공부했어요. 좋아하는 공부를 하다 보니 그 양이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었고 악보라도 읽기 시작하면 다 읽기 전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죠.”

이렇게 ‘무섭게’ 성악에 전념한 끝에 그는 중앙콩쿠르 1등을 거머쥐었다. 1989년엔 이탈리아의 베르디 국립 음악원에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졸업하던 해에는 40년 전통의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국제 베르디 성악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고 성악가라면 누구든 오르고 싶어할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에서 주역 배우를 맡는 등 그의 성공은 가히 놀라웠다.

“쉽진 않았어요. 춘향전의 이도령 역할을 외국인이 한다고 생각해봐요. 마찬가지로 오페라라는 서양 고유의 장르에 한국 사람이 와서 주역을 맡는다는 것은 어색하면서도 신기한 일이었죠. 동양인이라는 이질감을 극복하려고 오페라에 쓰이는 독일어와 이탈리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것은 물론이고 악센트, 발음, 행동까지 철저히 연습해야 했어요. 그렇게 노력하고 나니 다른 오페라 가수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뭐, 출연료도 내가 더 쌌고.(웃음)”

◇대중에게 클래식을 알리는 라디오 DJ가 되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돌연 15년간의 유럽생활을 마치고 2001년 한국으로 돌아와 「우회(detour)」라는 크로스오버 앨범을 낸다. 오페라 가수로서 주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만 집중하느라 정작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욕심에서 이런 앨범을 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앨범의 수록곡 중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결혼식 축가로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그는 대중에게 클래식을 알리는 일로 활동영역을 넓히게 된다.

대중에게 클래식을 알리고자 시작한 그의 대표적 활동은 CBS FM ‘아름다운 당신에게’라는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DJ를 맡은 것이다. 방송 중간 갑자기 소리높여 오페라의 한 장면을 열창하고 털털한 웃음을 터뜨리는 등 그의 방송은 여느 클래식 프로그램과 다르다. 점잖고 지루하던 클래식 프로그램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하고 친근한 그의 진행방식에 청취자들은 자연스레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때문인지 2007년에는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시상식에서 PD선정 최고의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냥 내 스타일일 뿐 의도적으로 ‘이렇게 진행하겠다’하고 계획한 건 없어요. 친구, 동생, 형님에게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설
명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청취자들을 친근하게 대하는 그의 태도 때문인지 그는 유난히도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인터뷰 중에 팬이 보내온 칡즙과 편지가 도착하기도 했다. “라디오 팬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의 내 모습을 다 알고 있죠, 일종의 가족과도 같아요.” 또 청취자들은 그가 목을 보호해야 하는 성악가임에도 계속 방송을 진행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성악가는 늦게 일어나야 해요. 저녁에 공연을 하려면 목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죠. 아침부터 목을 쓰는 지금 라디오 방송은 어찌 보면 성악가로서 제 평생 가장 위험한 일일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청취자들이 나를 통해 클래식을 좀 더 쉽게 알게 됐다고 생각할 때 많은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이젠 ‘클래식의 대중화’ 아닌 ‘대중의 클래식화’

그는 클래식을 대중에게 맞추는 ‘클래식의 대중화’도 중요하지만 대중에게 클래식을 알아가게 하는 ‘대중의 클래식화’ 또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식에게 악기를 가르칠 때 피아노가 먼저 생각나듯 우리 생활에서 클래식은 이미 많이 대중화돼 있죠. 하지만 막연하게 클래식이 좋다고 하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 클래식이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게 문제에요. 클래식을 진정 이해할 수 있는 한계선만 넘으면 정말 보석 같은 음악들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많아질 텐데 말이죠.”

그는 클래식이 어렵다고 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배우고 이해하다 보면 쉽고 친근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베토벤이 자기 오빠고 모차르트가 친구라고 생각하고 배워봐요. 거리감을 버리고 일단 여러 번 듣고 배우다 보면 너무나 기막힌 음악이라는 걸 알게 될 거에요.” 클래식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그의 철학은 그가 라디오 방송에서 설명했던 오페라를 묶어 소개한 책 『이 장면을 아시나요』에도 드러나 있다. 좀 더 쉽게 사람들이 클래식에 다가가게 하는 게 목표인 만큼 책은 오페라에 나오는 아름다운 아리아의 가사와 줄거리를 함께 소개하며 독자들을 오페라의 세계로 초대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오페라 가수’, ‘대중에게 친근한 바리톤 성악가’, ‘라스칼라의 젊은 사자’, ‘클래시컬 엔터테이너’ 등 그의 이름 석 자 앞엔 수많은 수식어가 자리 잡고 있다. 성악가, 라디오 DJ, 교수에 공연 아티스트까지 많은 일을 해내는 그가 정작 가장 갖고 싶은 수식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을 일깨워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그는 오늘도 지치지 않고 클래식을 소개한다. 바리톤의 깊은 울림과 유쾌한 웃음을 머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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