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 온 국립극장은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극장은 오는 6월 초 출범을 목표로 국립극단 법인화를 추진 중이다.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국립극장 전속단체의 예술 경쟁력 향상 △독자적·자율적인 극단 활동 △다양한 재원조성 기회 확보와 공립 예술단체의 체질 개선을 골자로 한 국립극단 법인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달 28일 국립극장 측이 공문을 통해 국립극단 전속규정 폐지 및 단원해고 행정조치 시행명령을 전달하며 국립극단의 법인화는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율성과 경쟁력을 목표로 한 국립극단 법인화는 기존 단체들의 체질개선이라는 명목 아래 일방적으로 오디션 제도를 시행함과 동시에 결국 지난 달 30일자로 극단 단원 23명 전원을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이번 오디션 집행은 법인화 이후 재구성될 국립극단의 단원을 뽑기 위한 평가 심사를 하기 위한 절차로 전국공공서비스노조 국립극장지부의 불법오디션 반대 결의로 이어지면서 극장과 노조 측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이에 대해 문체부와 국립극장은 “여러 사설 공연 단체들이 질 높은 연기와 공연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과 국립극장 단원들 간의 차별화와 국립극장 단원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극장 측의 일방적인 오디션 제도 도입에 반대하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립관현악단 이재원 지회장은 “기존에 시행되고 있는 작품별 상시평가제도가 있을 뿐더러 이번 오디션은 사전에 논의된 바도 없고 합리적 기준도 제시돼 있지 않다”며 “단원들 간의 연봉 차등 적용이나 극장의 입장에 반대하는 단원에 대한 강등과 해고의 명목으로 만들어진 오디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국립극단 단원 이상직씨 역시 “국립극단에 뒤이어 나머지 3개 전속 단체인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창극단도 법인화 추진 조짐을 보이며 일방적 오디션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단원들의 오디션 불참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제대로 된 오디션을 치를 수도 없는 상황인 만큼 문체부와 극장 측은 이 문제에 대해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오디션 제도의 도입은 단원들의 고용과 연봉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문체부와 극장 측은 조기정년제와 계약기간차등제 등을 도입하며 계약기간의 단축과 고용유연성 확대를 추진해 왔다. 더불어 법인화 이후 고용안정제도라 할 수 있는 전속단원제를 폐지하고 작품별 단기 고용계약관계로 단원들과의 고용관계를 전환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연대 사회공공연구소 박정훈 연구위원은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국립극단 법인화는 단원들에겐 곧 단기 고용 계약과 낮은 임금으로 직결되는 것으로 이는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극단 단원들 간의 생산력 없는 무한경쟁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극작가 노경식씨는 “예술은 단순히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혼과 정신의 문제”라며 “예술 활동이 고용과 돈의 문제로 얽히게 되는 상황에서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국립극단 법인화는 국립예술기관의 존립 목적인 예술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국립극단 예술가들이 과거 아홉 차례에 걸쳐 총 300여명의 청소년에게 직접 연극을 가르쳐 온 동해청소년연극캠프사업은 축소 혹은 폐지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노경식씨는 “법인화가 되면 입장료와 대관료가 치솟고 시민공연예산의 축소와 함께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신장시키는 활동은 급격히 축소될 것”이라며 “예술의 공공성을 지켜야 할 국립극장이 지금은 예술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원 지회장 역시 “영리기업이 극장 운영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추구하는 동안 당장에 수익성이 나지 않는 분야는 오히려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영리를 떠나 순수하게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국립극장은 온전히 제 기능을 하는 국립극장이라고 할 수 없다”라 말했다. 

또 국립극장이 그동안 단체협약이 인정하고 있는 노사협의기구인 공연문화발전위원회를 부정한 채 일방적 정책을 수립해 왔으며 미미한 지원예산 등 극단 운영에 있어서 불합리한 모습을 보여 왔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로 인해 극단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온 상황에서 법인화보다 국립극장의 운영 투명성과 지원책 확보가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극단 ‘피악’의 나진환 대표는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경쟁력이란 미명 하에 단원들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정책과 지원책 수립을 고민해야 할 때”라 말했다. 국립극단의 이상직 단원 역시 “현재 전용극장도 없고 예산도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한 법인화 추진보다는 노조 측과의 민주적 극단 운영방식 논의와 구체적 지원책들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 아니냐”며 정부를 비판했다.

3백년 전통의 프랑스 국립극장 ‘코미디 프랑세즈’는 배우가 2백명이나 되고 영국의 국립극장은 전속배우만 1백명이 훨씬 넘는다. 또 우리나라의 국립극장과 설립시기가 비슷한 러시아의 ‘말리극장’ 역시 전속단원이 8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우리나라 극단 단원 23명보다 훨씬 인원이 많음에도 국가의 안정적인 재정 지원과 극장 운영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여기에 단원들의 열정이 더해져 그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극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평이다. 이런 국외의 상황은 법인화 과정에서 극의 질을 높인다는 구실로 극단의 여건을 고려치도 않은 채 무턱대고 극단 단원 23명을 해고부터 한 우리나라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60년을 뜻하는 환갑은 인생의 순환점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60주년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한 국립극장이 법인화 추진 논란을 극복하고 국립극장으로서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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