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위기에 처한 '두리반' 거눔ㄹ 3층 실내에서 3인조로 구성된 '강건너 비행 소녀'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신동호 기자  clavis21@snu.kr

지난 1일(토) 홍대입구역 부근은 거리에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으로 시끄러웠다. 거리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인디밴드의 연주소리와 많은 인파로 늘 북적거리는 홍대거리가 시끄러운 게 뭐가 새삼스러울까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날 동교동 3거리의 칼국수집 ‘두리반’ 앞 공터에서 울리는 이 와글거림은 조금 특별했다. 바로 5월 1일 노동절 120주년을 맞이해 열린 ‘뉴타운 컬처 파티 51+(New Town Culture Party 51+)’공연 때문이다. 60개 이상의 밴드가 모여 정오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열다섯 시간 동안 릴레이 공연을 펼친 이 축제는 철거 위기에 처한 칼국수 가게 ‘두리반’을 위한 인디 음악가들의 평화 시위였다.

‘두리반’은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이란 우리말이다. ‘두리반’은 2005년 안종려씨가 연 칼국수 가게의 상호였다. 그러나 2006년 이곳이 신공항철도 공사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철거 압력이 두리반에 불어 닥쳤고 그 후 2009년 성탄절 전야, 안씨는 용역들에게 집기를 털리고 가게를 빼앗겼다. 고작 2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안 씨에게 남은 것은 달랑 철거 보상금으로 받은 300만원. 권리금으로 1억원이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5년여의 시간 동안 홍대 앞 예술가들의 단골집이었던 ‘두리반’.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채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이 작은 가게의 싸움에 두 팔을 걷고 나선 것은 그곳을 드나들던 젊은 음악가들이었다.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가수들과 용산에서 시위 연주를 하던 가수들이 합심해 음악회를 연 것이다. 이렇게 한 주에 서너 번씩 공연을 연 것이 어느새 100일을 훌쩍 넘겼다.

이렇게 연을 맺은 사람들이 내친김에 대판 일을 벌였다. 5월 1일, ‘철거 위기에 놓인 두리반을 살리자’는 기치 아래 51개 팀의 밴드를 모아 밤샘 공연을 하기로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한 팀, 두 팀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애초 계획한 51팀을 훌쩍 뛰어넘어 60팀 이상이 됐다. 행사에 참여한 ‘회기동 단편선’ 밴드의 단편선씨는 “한 가게의 권리를 위한 자리였을 뿐만 아니라 자립 예술가들이 하나로 모여 사회적인 목소리를 낸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두리반' 앞 공터에서 '멍구 밴드'가 공연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안씨의 남편인 유채림 소설가는 커뮤니티에 ‘말라죽지 않기 위해 쉼 없이 우물을 파거나 우물 하나로는 모자라 남이 파놓은 우물까지 빼앗고자 발버둥 치는 곳.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다. 사막이니까’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는 이번 행사를 통해 “타들어가는 가슴에 기타음이 단비처럼 쏟아 내렸다”고 주변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며 “여기에 있는 밴드 친구들이 두리반에서 칼국수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부당함과 맞서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축제를 준비한 ‘그룹 51’의 한받 기획자는 “우리가 직접적으로는 승리를 이끌어 내기는 힘들지 모른다”면서도 “우리에게는 기타와 북과 목소리와 열정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승리의 조건들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이 말하는 승리의 조건들은 바로 ‘사람들의 관심’이다. 분명 기타음은 철거용역들의 우격다짐을 막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5월의 어귀에서 어느 농성의 깃발보다 듬직한 기타를 들고, 어느 시위의 구호보다 뜨거운 노래가 흘러간 홍대의 한 골목에서는 지금도 ‘두리반’을 위한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두리반 건물 앞 공사현장의 회색 철판엔 "한국 예술가의 눈길은 단 한사람의 불행도 단 한목숨의 아픔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고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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