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아시아의 지식인 - L.A.자데

인간의 애매모호한 언어표현과 지식 숫자화한 논리학
‘참 아니면 거짓’ 이분법의 한계 벗어난 유연한 추론 방식

“술 적당히 마시고,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 날, 한껏 기대에 부풀어 집을 나서는 서울대 양에게 부모님은 약속이나 한 듯 “술 적당히 마시고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라고 하셨다. 저녁식사 후 이어지는 술자리, 재미있는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문득 휴대폰을 보니 어느 새 11시 반. 서울대 양은 갑자기 ‘지금 출발해야 12시에 간신히 들어가는데 너무 늦게 들어가는 건 아닌지...’ 또 ‘소주 4잔을 마셨는데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한다. 왜 부모님은 “소주 3잔 넘기지 말고 12시까지 들어와”라고 하지 않았을까? 인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애매모호하다. 인간이 가진 지식이나 규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늘부터 술은 적당히 마셔야 겠다” 또는 “내일 아침 운동을 하는 날이니 오늘은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야 겠다”라고 결심한다. 컴퓨터과학자들은 지난 50년간 컴퓨터도 인간처럼 추론을 해 지능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가운데 퍼지로직(Fuzzy Logic: 퍼지=애매모호한)은 애매모호한 인간의 언어와 지식을 숫자로 구체화해 추론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름 때문에 퍼지논리학 자체가 애매모호한 것으로 오해를 받고 있으나 실제로는 애매모호한 것을 숫자로 구체화해 추론에 사용한다는 뜻이다.


“소주 3잔이면 적당히 (0.8) 마셨으며 동시에 많이 (0.2) 마신 것이다”

퍼지논리는 퍼지집합론을 바탕으로 한다. 기존의 집합론에서 대상은 특정 집합에 속하거나 속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퍼지로직에서는 이런 집합을 ‘딱딱한 집합(crisp set)’이라 부른다. 반면 ‘퍼지집합(fuzzy set)’에서 대상은 소속 여부가 아닌 0에서 1까지의 소속 ‘정도’를 가진다. ‘소주 3잔 이하’는 딱딱한 집합이고 ‘적당한 양’은 퍼지 집합인 것이다. 즉 소주 4잔을 마신 서울대 양은 ‘소주 3잔 이하’ 집합에는 속하지 못하지만 ‘적당한 양’ 집합에는 0.8 정도 속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양’ 집합에도 0.2 정도 속할 수 있다. (구체적인 값은 컴퓨터 과학자가 정한다.) 이제 ‘4잔’이라는 명쾌한 숫자와 ‘적당한’, ‘많은’ 등의 애매모호한 언어표현이 통합돼 추론이 전개될 수 있다.

퍼지집합은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분교)의 로트피 자데 교수에 의해 제안됐다. 그는 1921년 이란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태어났다. 자데의 어린 시절 그곳에 구소련의 스탈린 집단농장 시스템이 도입되자 가족 모두 이란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수학능력시험 전국 2등의 성적으로 테헤란대학교 전기공학부로 진학했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MIT와 콜롬비아에서 수학했다. 그는 언어를 수리화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며 퍼지집합을 ‘언어 변수’라는 개념으로 처음 소개했다.


“어떠한 명제도 참이거나 거짓이지 그 중간치는 없다” vs “색즉시공 공즉시색”

퍼지이론은 발표된 후 미국이나 유럽에서 각광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지탄을 받았다. 유럽문명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 근거를 두고 발전하였다. 사유의 3개 법칙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어떠한 명제도 참이거나 거짓이지 그 중간치는 없다’는 배중률(排中律: Law of the excluded middle)이다. 퍼지로직은 바로 이 배중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 센다이철도의 기차 속도제어, 마쓰시타의 진공청소기, 캐논의 카메라, 미쓰비시 산업용 에어컨을 필두로 수많은 산업용 제어와 가전제품에 사용됐다. 한국에서도 90년대에 퍼지세탁기, 퍼지냉장고, 퍼지밥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전제품과 산업현장에 적용됐다. 퍼지이론이 아시아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진 데에는 아시아인의 철학적 유연성이 큰 역할을 했다. 두 가지 대립하는 개념의 택일이 아닌 종합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흑백논리를 지양하고 중용을 중시하는 점, 음과 양의 혼재, 그리고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불교철학의 영향 등이 그것이다. 아시아인들은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라는 ‘애매모호한’ 생활철학 속에서  성장한다. 따라서 어떠한 명제가 반드시 참도 거짓도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조성준 교수
산업공학과

자데 교수는 애매모호함을 처리하지 못하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한계를 아시아적 철학에 기반을 둔 퍼지논리학으로 극복했다. 21세기에는 더 많은 아시아의 지식인들이 아시아적 관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기존 유럽 중심의 이론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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