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교수
농경제 사회학부
달포쯤 전 유명 방송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출세지향적인 20대들을 비판하는 토론패널로 참여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초중고생들이 엄마와 함께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 도서관에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던 20대들이 한심해보이기 보다는 측은해 보여서다.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기는 어른들의 위세에 눌려 자신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도 전에 영어와 수학, 논술과 과학 등의 입시과목 공부만을 강요받으며, 유치원 때부터 대학에 올 때까지 무한경쟁에 내몰렸던 아이들이 아닌가? 대학을 졸업하면 모두 취업을 하던 우리 때와는 달리 88만원 세대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아닌가?  기성세대들의 사욕으로 인해 숨 가쁘게 외길을 달려온 아이들을 비판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대학에 들어 왔으니 옴츠렸던 가슴을 펴고 그동안 눌러놓았던 생각을 마음껏 드러내어, 우리 사회의 왜곡된 모습이 더 이상 대물림 되지 않도록 세상을 바로 보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처럼 혼란스럽고 비뚤어진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옳고 그름을 뒤집어 보이는 일이 허다하니 어느 편이 바른 것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황우석의 연구부정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세계제일의 생명공학을 자부하던 국민들은 줄기세포와 처녀생식을 구분하는 생명공학 전문가가 되었다. 금융위기와 미네르바 사건을 겪으며 우리는 서브프라임과 통화스왑을 얘기하는 금융 전문가가 돼야 했으며, 온 국토의 모든 강들을 콘크리트 호수로 만드는 일이 운하에서 4대강 사업으로 바뀌는 동안 우리는 수중보와 물고기로봇에 대해 토론하는 토목과 환경 전문가가 돼야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촛불시위를 보며 우리는 SRM과 BSE를 공부하는 광우병의 전문가가 되었고, 천안함사태로 우리는 이제 피로파괴와 버블제트를 구분하는 해전의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  진실을 왜곡하고 불리한 사실은 감추려하는 위정자들과 재물과 권력을 움켜쥐면 모든 것이 옳다고 믿는 세상에서 바르게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돈과 향락을 요구하는 검사가 전직 대통령을 모욕하여 자살하게 만드는 세상이 아닌가?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바른 눈을 가지고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지금보다도 더 억압받던 세상이었다. 폭력과 억압과 맞서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기르고자 했다. 역사, 경제, 사회, 철학서들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하며, 시사교양지들을 보고 소설도 읽었다. 그때의 책읽기가 오늘날 내가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바로 보며 살아갈 수 있는 깊이를 주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쉬운 것은 대학시절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힘 있는 자와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학생들의 자유와 소신을 억누르는 일에 앞장섰던 분들이 많았던 당시 대학사회에서 존경할 수 있는 교수를 만나기는 힘든 일이었다. 지금의 대학에는 강직하고 능력 있는 교수님들도 많이 있으니 찾아가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질문하기를 그쳐버린 세대가 되어선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묻기 시작하라.지율스님이 우리 대학에 와서 남긴 말이다. 100년 만의 추위가 몰아쳐도 꽃들은 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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