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굽이 있는 동물의 입(口)과 발굽(蹄) 주변에 물집이 생긴다는 구제역이 축산농가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전염성과 치사율이 높은데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감염지역의 관련 동물들을 모두 소각 또는 매장해야 한다. 인천 강화에서 발병해 경기도 김포, 충북 충주에까지 확산돼 수만 마리의 소·돼지 등이 살처분 됐다. 2002년 구제역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가 재현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자식 같은 가축을 죽여야만 하는 해당 농가의 피눈물에 가슴이 무겁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동물이 겪을 고통에도 마음이 쓰인다. 살처분될 동물에게 고통을 덜 주기 위해 매장 전 전기충격 또는 약물투입으로 미리 죽인다고 한다. 그러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기에는 처리해야 할 가축의 수가 너무 많아 생매장되는 경우도 많다고 전해진다. 큰 구덩이 속에 가축을 몰아넣고 이 위에 흙을 덮는 것이다. 이를 집행하면서 지켜봐야 하는 방역 관계자들의 가슴에도 멍이 들 것이다.

너무 많은 수의 동물들이 밀집된 공간에 갇혀 지내니 이렇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대 축산기술의 발전은 대량사육체제를 가능하게 해 인간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왔다. 과거에는 귀했던 육류 자원이 대량으로 공급돼 인간은 풍부한 영양을 값싸고 편리하게 섭취하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이면에 존재하는 여러 부작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각종 호르몬제를 맞고 좁은 공간에서 생장하는 동물에게 스트레스가 없을 리 없다. 이로 인한 질병을 막기 위해 항생제가 투여되며 대량으로 도살돼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각종 약물이 투여된 동물이 배설한 분뇨에는 환경에 치명적인 성분이 함유돼 있는데 이것이 하천으로, 바다로 유입돼 수자원 오염을 유발한다. 이외에도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사료작물재배 증가로 인한 식량작물재배 감소 등 대량사육체제의 폐해는 한둘이 아니다.

육류·어류자원의 최종 소비자는 다름 아닌 인간이다. 체내에 쌓인 화합물들은 앞으로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까?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어떤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구제역으로 ‘슈퍼젖소’란 별칭을 가진 소 역시 살처분 됐다. 이 소가 그간 생산해낸 우유는 총 14만 4771kg으로 200ml팩 기준으로 서울 시내 초등학생 모두가 1개씩 먹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라 한다. 이 엄청난 생산력이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육류든, 육가공품이든 마트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무척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의식 있는 생명체가 제공한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둔감해져 버린 건 아닐까? 과잉일 정도로 풍족하고 편리한 세상에서 소각되고 매장된 것은 그들 동물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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