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빈집

어둡고 좁은 방 안, 여자가 웅크려 있다. 냉기와 습기가 온몸을 엄습하고 바퀴벌레와 들쥐가 돌아다녀 보통 사람이라면 질색할 환경에서 그녀는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행복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은 오히려 인생을 좀먹는 고통일 뿐이다. 최근 출간된 소설 『빈집』의 주인공 ‘어진’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에 의해, 결혼 후에는 남편에 의해 빈집에 갇힌 그녀의 처지는 분명 흔한 일은 아닐 게다.

올해로 등단 사십년.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 이름난 저자 김주영은 『객주』, 『천둥소리』 등의 대하소설부터 『달나라 도둑』 같은 성인 동화, 『홍어』로 대표되는 서정적 가족소설까지 문학 세계를 꾸준히 넓혀왔다. 최근 몇 년간 단편 위주로 활동하다 8년 만에 내놓은 장편 『빈집』은 그가 구축해온 가족소설의 계보를 잇는다. 그러나 전작에서 그가 사랑 충만한 전통적 가족상을 구현했다면 이번에는 극한까지 망가지고 일그러진 가족을 그려보였다. 

작품의 제목이자 무대인 ‘빈집’은 부성(父性)의 부재와 거기서 시작된 공허를 상징한다. 객지를 떠돌며 사기도박을 일삼는 아버지가 집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에 뒤덮인 어머니는 딸 ‘어진’을 학대하며 자신의 공허함을 대물림한다. 학대와 방치 속에서 자란 어진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다시 빈집에 남겨지고 결혼 후에도 남편의 냉대로 감금생활은 계속된다. 탈출을 감행한 어진은 이복언니를 찾아가지만 결국 그녀마저 종적을 감춰 어진은 끝내 홀로 남겨진 공허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진의 유년과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되풀이되는 것은 실패한 관계로 생겨난 한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와 어진, 어진과 남편의 관계. 어머니와 아버지의 소원한 관계는 업(業)이 돼 어진과 남편의 사이마저 갈라놓는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찾으러 집을 비운 사이 외로움을 달래려 자위를 배운 어진이 남편에게 음란한 여자로 낙인찍혀 버림받기 때문이다. 거듭되는 시련 속에서 어진은 벗어나는 법을 배우기보다 순종하고 견디는 법을 터득하고 이로 인해 버림받는 관계가 끝나지 않는다.

‘수난이대(受難二代)’는 어진 모녀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복언니 ‘수진’ 역시 비대한 몸으로 임신하지 못해 남편의 외도를 묵인하며 한을 삭인다. 어진 아버지의 전 아내였던 수진의 어머니도 어진의 어머니를 피해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어진의 어머니가 이혼한 남편과 자신의 관계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까지 전염된 가장의 역마살 때문에 여자들은 모두 평화롭게 정착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차미령 문학평론가는 ‘빈집’을 “온전히 사랑받을 수 없는 여자들의 폐허”로 해석했다.

전통적 가족이 점점 해체돼 삶이 파편화되는 요즘, 우리는 마음속에 자리한 ‘빈집’에 갇혀 있다. ‘데면데면’을 넘어 ‘살벌한’ 관계로까지 타락한 오늘날의 가족에 문제의식을 가진 경고를 보내는 저자의 시도가 날카롭다. 다음 작품에서는 이런 시도가 또 어떻게 발전할까. 창작을 향한 ‘탐욕’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는 저자의 의미심장한 고백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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