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가 살아 숨 쉬는 공간과 시간에 따라, 수신자에 이르기까지 어떤 여행경로를 거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기호해석을 ‘복잡하다’고 느낄 사람을 위한 반가운 이야기가 있다. 좀 더 손쉽게 대중을 기호의 세계로 이끄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와 A.J.그레마스(Algirdas-Julien Greimas). 두 사람이 각기 만든 기호 해석 도구는 기호학을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도 친숙하게 느낄 만큼 널리 쓰인다.

자동차 광고 시나리오에 숨겨진 기호학 이론 모델이 있다?

처음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기호학적 해석을 시도해 기호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바르트의 ‘신화 구조모델’을 먼저 살펴보자. 바르트의 신화구조는 흔히 소쉬르가 말한 ‘기표와 기의로 구성된 기호의 의미작용’이 현대사회에서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나의 기호는 문화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더 큰 기호체계가 된다. 원래의 일차적 기호체계가 또 다른 함축의미를 지닌 이차적 기호체계, 즉 신화의 기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고 있는 흑인 소년이 담긴 보도사진에서 소년이 경건하게 프랑스 국기에 경례하는 모습은 프랑스인의 애국심, 인류애 등을 의미하는 기표다. 이렇게 생성된 기호는 다시 프랑스의 인종차별을 은폐하려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신화를 내포한 기표가 된다. 오장근 교수(성산효대 효문화학과)는 “바르트의 신화구조는 매체 보도, 광고 등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숨겨진 신화화된 이데올로기를 분석할 수 있어 많은 연구자가 활용한다”고 말한다.

그레마스의 기호사각형 역시 현대 기호학의 모든 이론 가운데 손꼽히는 기호분석틀이다. 그레마스 기호사각형에서 ‘범주화하기’는 텍스트의 기호학적 분석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기호사각형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여러 범주관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차용했다. 기호사각형의 각 꼭짓점은 텍스트의 의미체계를 네 가지로 범주화하고 사각형을 이루는 네 선분과 두 대각선은 체계간 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기호사각형의 중요한 축은 ‘반대’와 ‘모순’이라는 이원적 관계다. 반대관계는 서로 상반되는 특성을 가진 대립관계이고 모순관계는 어떤 변별적 특성의 보유 여부에 대한 관계다. 세 번째 관계인 함축관계는 특정 범주가 또 다른 범주를 전제하는 관계다. 예를 들어 ‘하얀’색은 ‘까만’색과 서로 완전히 대립하는 반대관계지만 ‘하얀’색과 ‘하얗지 않은’색, 그리고 ‘까만’색과 ‘까맣지 않은’ 색은 ‘하얗다’ 혹은 ‘까맣다’라는 특성 유무에 따라 분류되는 모순관계이다. ‘하얀색’은 ‘까맣지 않은 것’을 전제하고, ‘까만 것’과 ‘하얗지 않은 것’을 전제하므로 두 범주는 함축관계이기도 하다.

그레마스의 기호사각형을 통한 기호해석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송치만 교수(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도 “최근 많은 학자들이 영화, 드라마, 매체보도 등 다양한 텍스트의 구조적 분석에 그레마스의 기호사각형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장 마리 플로슈 등 기호학자들은 기호학적 접근법 중에서도 이 그레마스의 기호사각형을 디자인 및 브랜딩에 적극 활용해 눈길을 끌었다. 플로슈 교수는 기호사각형에 근거해 시트르앵 승용차의 네 가지 가치부여 유형을 만들었다. 그레마스 기호사각형의 의미관계를 승용차의 상품적 가치에 적용해 본 것이다.


안락함과 신속함이라는 현실적 사용가치, 즉 실제적 가치는 모험과 인생 등을 의미하는 유토피아적 가치와 반대관계에 있다. 그리고 유토피아적 가치는 이를 부정하고 가격·품질만을 고려하는 비판적 가치와 모순관계에 있으며 실제적 가치는 세련미, 사치, 광기 등을 의미하며 사용가치를 부정하는 유희적 가치와 서로 모순관계다. 한편 실제적 가치는 비판적 가치를 전제하며, 유토피아적 가치는 유희적 가치를 전제하는 함축관계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분석된 광고 시나리오는 자정에 출발해 8시까지 운전자를 바다로 데려다 주는 ‘실제적 가치’에서 바다에 잠수하는 ‘광기’를 통해 ‘유희적 가치’로 이동한다. 그리고 다시 “시트로앵은 삶을 체험한다”는 문구를 통해 상품에 ‘유토피아적 가치’를 부여하며 그것을 존재론적인 것으로 만든다. 결과적으로 신속하고 안락하지만 ‘노령화’된 자동차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던 시트로앵은 광고와 브랜딩의 변화를 통해 상품의 이미지를 유토피아적 가치로 혁신시켜 판매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김성도 교수는 “플로슈 교수의 연구는 한국의 광고 및 마케팅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광고 메시지의 심층적 문화의미작용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하는 본보기가 된다”고 평했다.

파리기호학파의 새로운 슬로건: "기호학의 응용과 실천"

1990년대에는 현대사회 매체와 대중문화에 침투한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바르트의 신화구조모델 등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최근 기호학자들은 이러한 ‘대중문화 분석’이라는 전통적 관심사에 그치지 않고 기호학적 방법론의 응용과 실천이라는 슬로건 하에 관심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념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면서 문화가 사회의 핵심가치가 됐고, 다양한 뉴미디어가 등장해 문화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파리기호학파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자들은 영상콘텐츠, 홍보마케팅, 도시공간 등의 영역에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기호학적 방법론의 유용성을 증명하고 있다. 송치만 교수는 “마케팅 분야에 진출한 파리기호학자들은 기업을 상징하는 광고, 홈페이지를 기호학적으로 분석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 및 브랜드 이미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 발전, 유지되는지 연구한다”고 말했다. 백승국 교수(인하대 문화콘텐츠학과)는 “기호학적 차원에서 콘텐츠의 몰입 효과를 유발하는 문화코드와 기호가 무엇인지 파악한다면 즐거움을 주는 이미지와 스토리텔링 장치를 콘셉트 설계 단계에서 전략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는 다양한 게임 캐릭터 등의 상상적 기표를 전략적으로 생성하고 배치해야 한다. 여기에 기호학적 방법론이 매력적인 콘셉트를 설계하고 이에 맞는 디지털 이미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여년 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성행한 도시기호학도 주목할 만하다. 파리에서는 지하철뿐 아니라 공공건축물의 설계에 공간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하는 기호학자들의 참여가 부쩍 늘어났다. 독일의 기호학자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시행한 ‘베를린 도심재생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한국 기호학계에서도 지난해 봄 ‘서울의 기호학’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려 도시를 비롯한 공간에 대한 기호학 담론이 무성함을 입증했다. 한국의 기호학자들은 테마파크 조경, 도시브랜딩 등의 분야에서 공간을 기호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의미를 창출해 설계자 중심의 획일적 디자인이 아닌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함축한 디자인을 제안한다.

기호학자들이 다양한 공간과 문화현상에 기호학을 다채롭게 응용하면서 신비의 베일에 가려 있었던 기호학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송치만 교수는 “기호학 응용이 이론적 깊이가 담보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일부에서 제기되지만 응용 과정에서 충분히 이론적 발전을 꾀할 수 있고 현장에서도 그 유용성이 입증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한다. 문화 텍스트의 숨은 의미구조를 파헤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꾸로 문화콘텐츠 디자인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호학은 앞으로도 다양한 옷을 입고 현실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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