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상관없는 『대학신문』에
소중한 청춘을 바친건 치열함 때문
다시 대학의 신문으로 거듭나도록
치열한 쇄신 지켜봐주시길

이대한 부편집장

한순간이었습니다. 제 마지막 기사였기에 온 심혈을 기울인 인터뷰 기사가, 한 주 동안 40여명의 기자가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피땀 흘려 쓴 다른 기사들이, 삽화기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그린 삽화와 그래픽이 한순간에 빛을 잃었습니다. 『대학신문』은 본부의 기관지가 아니냐는 말을 들어도, 진상조사단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비판 자보가 붙어도,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한다면 학우들이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어왔던 희망은 무색해졌습니다. 『대학신문』을 누가 읽느냐는 무관심에도 우리가 좋은 신문을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언젠간 다시 사랑받는 신문이 될 날이 오리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 아래 방학을 헌납하고, 졸업을 미루고, 휴학을 하고, 시험을 포기하고, 어떤 이는 애인까지 버렸습니다. 그 모든 열정이 채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한순간에 빛이 바래졌습니다.

그러나 억울하고 말고를 떠나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무런 면목이 없습니다. 잘못은 엄하게 꾸짖어 주시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강하게 질책해 주십시오.

허나 허탈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대학신문』은 제 소중한 청춘을 2년이나 바친 곳이기 때문입니다. 퇴임을 불과 3주 앞둔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허망함은 더 큽니다. 한때 중도포기를 고민했다 남아있기로 결정했던 저였기에 이번 일은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만약 그때 신문사를 나갔다면 이런 불명예와 고통을 감내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과학도가 되려는 제게 『대학신문』 활동 경력은 별 스펙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끝까지 남기로 마음을 다잡은 이유는 이곳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이곳의 명예가 실추된 상황에서 퇴임을 맞게 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겪은 『대학신문』에는 치열함이 있습니다. 아마추어 학생 기자들이 학업과 병행하며 신문을 매주 발행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벅찬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중간에 포기하는 기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신문이 꿋꿋이 나오는 것은 학업을 제쳐놓고 매주 밤을 새우며 기사를 탈고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학엔 꼬박 한 달을 매일 1시 반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일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남들이 유럽여행을, 해외연수를 떠날 때에도 신문사에서 묵묵히 방학 아닌 방학을 보냈던 것은 다음 학기에 나올 기획기사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신문사 운영에 관한 중요한 문제가 불거질 때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밤을 새며 회의했습니다. 논쟁과 설득의 과정을 통해 모든 구성원이 납득할 만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10시간 넘게, 또는 며칠씩 마라톤회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주위에선 회의를 그렇게 지겹도록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좀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치열함이었습니다.

선배 기자들은 60년 4월, 혁명의 현장을 취재하고자 총탄이 날아드는 거리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 치열함에 비해 저희가 겪은 치열함은 보잘 것 없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최후의 변론 같은 이런 출사표를 내미는 것은 실망이 크더라도 『대학신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완전히 거두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입니다. 『대학신문』이 이번 일을 처절한 반성의 계기로 삼고 75동의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다시 대학의 신문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무리한 부탁일지 모르지만 『대학신문』의 치열함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그것이 아직 만들어야 할 신문이 남아있지만 섣부른 출사표를 내미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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