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낙관주의 추구는
진정한 의미의 긍정성과 멀어져
부정성과 긍정성 비율 조절해야
진정한 삶의 만족 누릴 수 있어

어느 순간 불어 닥친 긍정의 센세이션은 현대인들이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면서 꼭 가져야 할 필수조건으로 자리 잡게 됐다. 서점의 자기계발서에는 긍정에 관한 책들이 넘쳐나고,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행복은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번영하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을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좀 더 번영하는 삶의 조건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좀 더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럼 긍정성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사람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1913년 미국의 엘리노 포터가 쓴 소설의 주인공 ‘폴리애나’는 못 말리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세상에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그녀는 온 마을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유래한 폴리애나 현상은 어떠한 근거도 없이 지나치게 낙천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용어로 쓰인다. 지나친 낙관주의의 추구는 착각을 하거나 갈등을 부인하는 것으로 현실성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긍정성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적정 수준의 긍정성은 어느 정도일까? 사람들의 삶을 번영케 하는 긍정성의 조건에 주목한 로사다와 그의 동료들은 수학적 모델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답안을 제시한다. 긍정성과 부정성의 상대적 비율을 ‘긍정성 비율’로 정의하는데, 이것이 긍정성을 이야기할 때 핵심 요소이다. 비즈니스 팀을 상대로 회의 과정에 나타난 그들의 발언이나 정신건강이 좋은 사람들을 상대로 그들이 느끼는 정서적 경험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비율을 살펴보았는데, 놀랍게도 약 3:1 정도의 긍정성 비율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또 다른 흥미로운 것은 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행복한 결혼은 긍정 비율이 5:1, 실패한 결혼은 1:1로 나타났다. 즉,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긍정성 발현에는 특정한 비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삶의 큰 만족을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 왜 긍정성의 효과가 일어나기 힘든지에 대해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긍정성은 나선형처럼 증폭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긍정성을 경험하다 보면, 3:1의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그 지점을 기반으로 좀 더 번영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높이 뛰어도 체육관 천장보다 바닥에 가까운 것처럼 3:1이라는 긍정성의 비율을 넘어서는 높은 긍정성의 비율은 현실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삶 속에는 다양한 사건과 상황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어떻게, 무엇을 느끼느냐는 것이 맞물려서 돌아간다. 기쁨과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과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3:1이라는 긍정성의 비율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부정성을 무시하는 폴리애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최선의 방법으로 조절해 나갈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돛단배가 잘 다니려면 돛과 닻이 모두 필요한 것처럼 부정성, 긍정성을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부정성을 인정하면서 그보다 높은 수준의 긍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만족과 번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로사다가 전해주는 긍정성의 과학을 우리의 삶 속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5월의 햇살처럼 따뜻하게 채워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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