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보며 자신을 반성했다더니
2년 전 사과는 대국민 기만이었나
촛불마다 맺힌 민주(民主)의 열망
언제라도 뜨겁게 타오를 준비돼 있어

신현 취재부장
그 때, 그는 말했다.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에 그는 그렇게 자책했다.

거리엔 수많은 사람들. 날이 저물어 해가 빌딩 숲 저편으로, 꼬랑지만 내밀고 세상을 힐끔 비추더니 이내 사라진다. 어둑어둑한 남색 하늘 아래, 빨갛고 파란 꼬임이 만들어낸 길게 뻗은 고동이 있다, 청계(淸溪).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에 괘념치 않고 계속 순환하는 인공 개천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온통 사람 천지인 그곳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세상이 점점 까맣게 변해갈 무렵 모두의 손에는 하나, 둘 빛이 들어온다. 주황빛이 흔들흔들 놀면서 모든 이의 손위에 하얗고 말간 액체를 흘리며 타오른다. 교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 회사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 모두가 다른, 하지만 모두가 같은 초를 들고 하나의 촛불을 만들어 갔다.

주위에는 ‘닭장차’가 벽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겁을 냈지만, 누군가는 입에 욕을 담으며 과격하게 소리치고 때려 부수기도 했다. 눈앞의 초가 희뿌연 연기를 흩날리며 타오를 때의 간절한 심정, 그 마음은 작은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만드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그 자체였다. 국민의 마음보다 강국의 눈치를 더 살피는 정부에 대한 뜨거운 일침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소수 세력의 선동이라고 간주하던, 쇠고기 협상 문제에 관한 단편적인 ‘시위’로 규정하던 그들에게 똑똑히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2년 뒤 5월.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촛불시위가 있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 더해, 그는 취재원들이 ‘짜깁기’했다고 반발하고 있는 기획기사를 지면에 내보낸 한 보수 언론사를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나선다.

‘아침이슬’ 노래가 귓가에 들려온다. 우리의 그는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조소’를 배웠던 것일까. 우리들을 더욱 완벽하게 ‘호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편안하지 못했던 것을 그토록 자책했던 것일까. 말끔한 정장차림에 다소 온화해 보이는 안경을 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반성’ 발언은 정말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믿어서 죄송합니다.”

2010년, 지금 내 손에 쥐어진 ‘불 꺼진 초’는 먼지 쌓인 촛농, 까맣게 끝이 타버린 심지와 볼품없이 엉켜 있다. 그런데 자꾸 뜨거워진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의 2년 전과 극도로 상반되는 발언이 창피해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가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을 바라보며 생각한 것은 ‘대국민 사과’라는 이름의 ‘대국민 기만’이었던 것인가.

2년 동안, 긴 밤 지새우고 촛불마다 맺힌 영롱한 민주(民主), 우리의 순수한 소망은 지금 우리 마음에 설움으로 알알이 맺힌다. 그리고 또다시 불타오르려 한다.

뜨겁게 타는 가슴을 가진 우리의 촛불을 거짓됐다고 말하지 말라. 또한 촛불 앞에 거짓말하지도 말라.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격렬하게 태워 당신에게 우리의 따뜻함을, 뜨거움을 다시금 알릴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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