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뜻을 헤아리지 못해 송구하다”던 대통령이 2년만에 “국민이 반성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반성’ 화두에 국민은 분개했고 때아닌 반성 정국이 조성될 즈음 인터넷에서는 요상한 아이콘이 하나 등장했다. 이른바 ‘반성의 촛불맨’. ‘2년 전 촛불소녀’ 같은 깜찍한 이 아이콘에서는 ‘반성’이라는 피켓 앞의 한 소년이 “됐고, 투표(Just Vote)”라고 말한다. “‘반성’운운에 가타부타 따질 것 없이 6.2 지방선거 투표로 자신의 뜻을 밝히자”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재미’라는 윤활유를 타고 급속히 퍼진다. 촛불시위에 대한 인터뷰 왜곡 논란으로 기성 언론들이 정색하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여론은 이렇게 꿈틀댄다.

얼마 전 한 시민단체가 천안함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모임을 개최한 자리에서다. 경찰이 이들의 촛불을 모두 빼앗아 가자 참가자들은 각자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깔아둔 촛불 사진을 켜들었다. 경찰은 직무규정상 이것이 촛불인지 휴대전화인지 구분할 수 없었고 이 엄숙한 ‘규정’의 혼란을 조롱하며 촛불 사진은 밤새 빛났다.

‘어버이연합’의 비상식적 행태에 반발해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며 ‘자식연합’을 결성한 괴짜들은 유명한 이종격투기 선수 밥 샵(Bob Sapp)의 익살스런 사진 위에다 “6.2 지방선거 ‘밥(민생)’이냐 ‘삽(4대강 사업)’이냐”를 묻는 선거독려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한다. 

풍자다. 시경(詩經)에서는 “시에는 육의(六義)가 있는데 그 하나가 풍(風)이며, 상(上) 으로 하(下)를 풍화(風化)하고 하로써 상을 풍자(風刺)한다.… 이를 말하는 자 죄 없으며 이를 듣는 자 훈계로 삼을 가치가 있다”고 했고 후세에서 이를 줄여 풍자라 불렀다. 다시 말해 풍자는 ‘말하는 자 죄 없고, 듣는 자 훈계로 삼을’ 말이다.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이런 정치풍자들이 최근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기성 정치의 몰상식한 행태에 대해 비분강개하기보다 오히려 쿨한 방식으로 정치를 조롱하고 표리부동을 꼬집는다. 대통령의 말바꾸기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대신 “너는 말하라 나는 투표한다”는 식이다. 

이러한 풍자는 우선 재미가 있어서 관심을 끈다. 말하는 자 죄 없는 것이 바로 풍자이니 정치와 기성세대에 대한 조롱은 그 자체로 죄가 되지는 않겠다. 하지만 풍자에서 그치면 대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듣는 자가 훈계로 삼으려면 풍자에 무언가가 더해져야 한다. 

그래서 투표는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는 교과서에서 읊조리는 ‘권리이자 의무’ 이상이다. 기성세대를 조롱하면서도 오히려 그들로부터 젊은이들의 정치참여가 소극적이라고, 20대의 투표율이 낮다고 엄숙한 꾸짖음을 당하는 것은 그 자체로 웃음거리일 뿐이다. 

풍자는 유쾌한 반항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결국 실패한 반항이다. 쿨하게 조롱하고 싶다면 인터넷에서 풍자를 퍼나르는 데 그치지 말고 투표로 증명하라. 누구를 뽑든 반드시 투표하라. 듣는 자 훈계로 삼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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