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소설가 김미월보잘 것 없는 20대 청춘들의 어두운 방 이야기고립된 공간을 비추는 따뜻한 상상력

 

사진: 서진수 기자

 

한 평에 우주를 담다
방(房), 사람이 지내거나 일하기 위해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 넓어 봐야 수 평이요, 좁게는 발 뻗기도 어려운 작은 공간. 그래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 자립의 필요조건으로 ‘방’을 들었고, 제갈량은 ‘방’에 들어앉아 읽은 책으로 천하삼분지계를 내놓았단다. 이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방은 이미 거(居)하는 이가 오롯이 녹아든 작지만 거대한 세계다. 게다가 단칸방 장만도 어려운 20대라면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애착은 더욱 크기 마련이다.

소설가 김미월의 첫 장편 『여덟 번째 방』은 ‘20대의 방 이야기’다. 20대가 내뿜는 젊음으로 가득한 홍대 앞,  한 모퉁이 돌아 번잡함을 덜어낸 조용한 카페의 작은 ‘방’에서 ‘방 이야기꾼’을 만났다.


상상은 경험처럼, 경험은 상상처럼

“작가님 경험이죠?” 정곡을 찌르는 작품의 심리 묘사가 당연히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겠거니 하고 건넨 질문이다. 『여덟 번째 방』은 예비역으로 갓 제대한 스물다섯 오영대가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차인 충격으로 독립을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자취방으로 이사 온 영대는 전입자가 남긴 이삿짐에서 노트를 발견하고, 서른 살 김지영의 기록 ‘여덟 번째 방’을 읽기 시작한다.

“비슷한 질문이 많았는데 전부 만들어낸 이야기라 일대일로 대응하는 모델은 딱히 없네요.” 첫 질문부터 예상과 다른 답에 당황한 기자를 앞에 두고 그는 미소 지었다. 워낙 생생한 사건 묘사 덕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이냐고 질문했지만 그는 이렇게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특히 지영의 친구 ‘관’이 옷 벗는 장면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는 후문. 그러니까 ‘방’과 ‘이사’라는 굵직한 스케치만 경험이 그려냈고 거기에 색을 입히는 과정에는 상상력이 한몫한 셈이다. “오히려 열 번도 넘게 이사하면서 실제로 겪은 일이 더 극적이에요.” 안암동에 위치한 그의 ‘여덟 번째 방’에서는 오갈 데 없는 열네 살 소녀와 동거하면서 미혼모로 오해받을까 봐 짝사랑하는 선배를 피해 다니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공간, 공간, 공간…

『여덟 번째 방』에는 공간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녹아있다. 작품의 중심소재이자 무대인 방은 더 큰 공간인 ‘서울’에 속해 있고, 더 작은 공간인 ‘책’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와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단편 「중국어 수업」에서 그가 이미 선보인 문제의식은 “중심지로 보이는 서울 안에서도 중심과 주변부가 끊임없이 나뉜다”는 것. 16년을 서울에서 보낸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가진 자’가 아닌 이상 상경해도 서울 안의 ‘게토(ghett -o)’로 밀려난다는 서늘한 깨달음을 얻었죠.” 

서울의 이러한 문제점이 집약되는 공간이 바로 좁고 어두운 자취방이다. 김미월의 ‘방’은 주택에 딸린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가구다. 즉 ‘방<집’이 아닌 ‘방=집’의 관계인 셈. 여기서 개인은 타인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이 철저히 고립된 존재다. “몸의 독립이 생활의 독립으로, 정신의 독립으로 이어지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완전한 독립이 가능해지죠. 같은 20대라도 지방에서 상경한 자취생은 허허벌판에 천애 고아로 내쳐지는 격이잖아요? 혼자 쓰는 좁고 열악한 방은 그런 아이가 서울에서 냉엄하고 비정한 세상과 맞닥뜨리는 지점이에요.”

자취방에서 청춘을 보내는 20대의 대표격으로 설정된 영대와 지영은 ‘책’으로 ‘대화’를 나누며 비틀린 공간으로 상처받은 자아를 회복해나간다. “지영의 기록인 ‘여덟 번째 방’은 글을 쓴 지영이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면서 글을 읽은 영대를 주체적인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요.” 25년간 자기 의지대로 행동한 적이 없던 영대가 처음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바로 지영에게 그녀의 기록을 돌려주는 일이다. 따라서 이들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영은 영대에게 20대를 앞서간 선배로, 영대는 지영이 남긴 기록의 유일한 독자가 되면서 실로 ‘독점적이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영대와 지영 모두 자신이 호감을 가진 상대와 함께 하는 데 실패하는데도 작품의 결말이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재미있는 점은 가장 작은 공간인 책이 그 속에 서울과 방이라는 더 큰 공간을 품고 있는 것이다. “지영의 상상대로 이 세상이 한 권의 거대한 ‘팝업북(pop-up book)’이라면 영대의 이야기는 지영의 이야기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그에 포함되는 거죠. ‘여덟 번째 방’이 작품 전체의 제목이면서, 영대가 읽는 지영의 기록이기도 하고, 지영의 기억에 등장하는 책 이름이라는 설정은 이걸 반영해요.” 결국 작품은 . 이야기와 속 이야기로 구성된 액자소설이면서도 안팎이 불분명해 뫼비우스 띠를 닮았다. 


이 땅의 ‘영대’들에게 고함

두 주인공으로 표상된 20대는 마음은 내버려두고 몸부터 웃자란 탓에 방황과 고민으로 점철된 ‘보잘 것 없는’ 모습이지만 김미월 소설가는 이들을 다그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금의 교육제도에서는 소년기에 고민해야 할 꿈이 대입 이후로 유예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20대의 고민과 방황은 오히려 건강하죠. 서른이 넘어서도 ‘꿈 찾기’가 꿈인 사람들도 많아요.” 다만 지금이 비참하고 초라해도 더 나은 삶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 세상에 모든 희망이 거세된 완벽한 절망은 없으니까요.”

그 또한 꿈을 찾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현재에 이르렀다. 인권변호사, 택시기사, 신문기자 등의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고려대 재학 당시 접한 야학을 계기로 대안학교 교단에 섰다가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돌이켜 보면 여기에 오기까지 거친 모든 과정이 작가로서의 삶을 더 깊고 진하고 풍성하게 만든 것 같아요.”

작가로서 평생 천착할 주제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다음 작품 역시 이번처럼 상처받은 이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질 예정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위안부 할머니들의 오늘을 조명해보고 싶어요. 비틀린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는 개인의 상처는 늘 새로운 고통이거든요.” 독자에게 기쁨과 위로를 선사하고 싶다는 그답다. 오늘을 살아내는 20대의 좁고 어두운 자취방. 자세히 살펴보면 창 밖에서 아름다운(美) 달(月)이 이들을 비추고 있어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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