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밥과 장미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어린 재단사들의 근로환경 개선을 부르짖으며 분신한 지 40년이 지났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지만 전태일의 몸을 태우던 불길이 미처 비추지 못하는 곳이 있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을 둘러싼 갈등은 아직도 바로 서지 못한 노동 현실의 단면이다. 이 시대의 ‘시다’, 즉 노동자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지난 1일(토) 출간된 『밥과 장미』는 이런 ‘시다’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초상이다.

저자 오도엽은 『그리고 여섯 해 지나 만나다』, 『굵어야 할 것이 있다』 등의 시집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시 속에 우려내왔다. 저자가 목격한 노동의 현장은 그의 시 「노동자 탓이오」가 말했듯이 “더러버서 못 해먹을” 곳이다. 『밥과 장미』 역시 소외된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려냈지만 노동자들의 억울하고 분한 목소리가 더 짙고 시큰하게 묻어난다. 시에선 온전히 담기 어려웠던 현장감을 노동자들의 곁에서 취재한 ‘르포’ 형식을 빌려 전달하기 때문이다.

제목 『밥과 장미』에서 밥은 생계를 위한 권리, 장미는 인간으로 존중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저자가 그려내는 소외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그들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뺏는 자들과 대립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저자는 과감하게 ‘편파적인’ 관점에서 쓰겠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언론, 정치, 법조계 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그들의 행동을 변호할 수단을 이미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빼앗는 자’들의 변명 하나 없이 ‘밥과 장미’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비정규직 해고, 기업 도주 등의 사건을 바라본다.

르포 형식에 더해진 ‘편파적인’ 관점은 노동 문제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던 노동자들의 외침을 빠짐없이, 그리고 가까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의 지독한 저항의 목소리를 빌어 부당하게 권리를 침탈당하는 이들이 부조리한 노동 현실에 단호히 맞설 것까지 호소한다.

이 책은 분명히 르포집이다. 그러나 저자는 스스로 “저널리스트답지도 않고 르포르타주의 기본을 무시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내 글은 기사도 르포도 아닌 삐라”라고 말한다. 편파적인 관점으로 노동자의 편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이 편파적인 관점이 빼앗은 자에게 지나치게 쏠려 있는 권리를 공정하게 재분배한다. 투쟁의 씨앗이 한 송이 장미로 피는 날을 위해 저자가 뿌린 한 권의 삐라를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미래의 우리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대학생과 같이 취업하기 전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밥과 장미
오도엽 지음┃ 삶이보이는창┃304쪽┃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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