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현대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것이다. ‘예술’의 이름을 달고 전시된 일상적인 소품을 보고 관람객은 ‘이게 예술이야?’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작품과 비(非)작품을 나누는 기준이 모호해져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이 상황에서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는 “예술은 종말을 맞이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최근 출간된 『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는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은 예술과 인문학의 만남을 시도해 현대미술에 새 옷을 입혔다.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현대미술과 인문학’ 강좌를 엮어 글로 재구성한 이 책은 난해한 현대미술의 숲에서 길을 잃은 관람객을 위한 지침서다. 철학자이자 시인으로도 유명한 박이문 전 이화여대 교수를 비롯해 임태승, 이광래, 조광제 등 4인의 인문학자는 현대미술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던지며 ‘애매모호’한 예술의 세계에 겁먹은 독자들을 안심시킨다.

저자들은 ‘동일성’의 철학이 과거의 예술을 바라볼 때 유효했다면, 현대미술은 ‘차이’의 철학으로 보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미술이 더는 하나의 사조를 따르거나 거대담론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성과 탈중심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현대예술을 재정의하기 위해 책에서는 예술철학, 동양미학, 후기구조주의와 매체미학 등 ‘4인 4색’ 인문학적 관점들이 예술과 만나 향연을 벌인다.

이광래 교수(강원대 철학과)는 후기구조주의 관점에서 예술을 정의했다. 그는 모더니즘을 거부하며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사조를 “재현의 집을 뛰쳐나온 이민자”에 비유한다. 본원의 ‘이데아’를 꿈꾼 플라톤의 철학은 더는 모방을 거부하는 미술을 설명할 수 없다. 대신 니체에서 푸코, 데리다, 들뢰즈로 이어지는 ‘차이’의 철학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궁정의 시녀들>을 ‘재현이탈’의 출발선에 놓았다. <궁정의 시녀들>에서 재현의 주체였던 화가가 그림 속에 객체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이런 그림은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일 수 없다고 한다. ‘생각하는 대로 그리는’ 미술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책은 현대미술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의 생산자들을 위해 현대예술의 새 모델을 제시한다. 박이문 교수는 ‘둥지의 철학’이라는 독특한 시각으로 모델 만들기를 시도했다. 그는 새들의 둥지를 비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거처이자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구조물로 파악하고 예술이라는 구조물도 ‘둥지’의 원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견고하면서도 융통성과 조화를 추구하는 ‘둥지’ 구조가 애매모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구성된 예술을 바라보는 데 적절하다는 것이다.

김찬동 아르코 미술관장은 이 책의 의의를 “현대미술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해석과 타 분야와의 대화를 위한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서문에 적고 있다. 현대미술과 인문학의 만남인 이 책은 더불어 예술과 철학, 관객과 작품, 해석과 창작의 만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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