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창간] 국제판 인문학 계간지 『INDIGO』

대학원생·대학생 편집진, 세계적 석학들 편집위원으로 참여
종이잡지 형식으로 인터넷 없는 6대륙의 ‘낮은 곳’까지

상아탑에 갇힌 인문학이 아닌 삶 속의 인문학을 지향하며 세워진 부산의 작은 서점 ‘인디고 서원’에서 지난달 29일 국제판 인문학 계간지 『Indigo』를 창간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Indigo』의 편집진이 대학원생 편집장을 중심으로 전국의 대학원생·대학생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서원에서는 사회문제에 대한 한국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아 한국어판 인문교양지 『Indigo+ing』 을 4년간 발행해왔다. 그러나  『Indigo』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 지식인들로 필자의 폭을 넓혀 전 지구적인 인문학 소통의 장을 구축하고 있다.


6개 대륙 다양한 계층 목소리 담겨

인디고 서원은 6개 대륙을 돌며 세계적 석학과 실천적 지식인을 만나는 ‘글로벌 유스 북페어(Global youth bookfair) 프로젝트’를 2006년부터 시행해왔다. 『Indigo』의 창간은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됐기에 가능했다. 인디고 서원 허아람 대표는 “일회적 성격인 프로젝트를 넘어 지속적으로 그들과 사상교류를 할 수 있는 국제판 인문학 계간지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창간 계기를 밝혔다. 자신들의 저서를 꼼꼼히 읽고 날카로운 지적도 아끼지 않는 ‘어린’ 편집진의 열의를 높이 평가한 지식인들도 계간지 창간에 동참했다. 지그문트 바우만, 브라이언 파머, 마크 데이빗, 슬라보예 지젝 등 내로라하는 세계 석학들이 『Indigo』 편집위원을 맡았다. 박용준 편집장(고려대 철학과 대학원)은 “세계 각지에 있는 편집위원과의 회의는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수시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창간호의 표제는 ‘가치를 다시 묻다’. 인문학적 지식을 삶에 접목한 학자들이 필진 등으로 참여했다. 하워드 진과 지그문트 바우만은 인터뷰를 통해 희망과 정의, 자유라는 가치를 재정의하며 각각 인간이 삶에서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 자유와 안전에 대한 열망의 줄타기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창간과 함께 기획준비에 들어간 두 번째 호에 대해 이윤영 편집인은 “‘가치를 통한 사회변화의 공동주체’를 다음 표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Indigo』의 매 호에는 주제가 있지만 총 6개의 섹션 중 처음과 마지막 섹션에는 주제와 다소 무관한 글이 자유롭게 실린다. 계간지로서 하나의 관점에 파묻히지 않고 다양한 시각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창간호에는 체 게바라 평전을 집필한 쿠바의 빅토르 카사우스의 ‘혁명으로서의 사랑’과 아이티의 실천적 지식인으로 불리는 푸자 바티아의 기고글이 실렸다.


진정한 국제판 인문학 계간지를 향해

국내무대에서 국제무대로 시야를 넓힌 ‘국제판’ 계간지인 『Indigo』가 인터넷판 없이 영문의 종이잡지로만 출간되는 것은 다소 의외다. 이는 인터넷이 아닌 종이가 진정으로 넓은 지식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라는 편집진의 믿음 때문이다. 박용준 편집장은 “전 세계인구의 1/4만이 사용하는 인터넷은 절대 평등한 매체가 아니다”라며 “세계의 ‘낮은 곳’ 구석구석의 이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도록 종이잡지 형식을 고수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인디고 서원은  『Indigo』의 국제 유통망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이미 영국과 캐나다, 미국에는 유통협약 체결을 완료한 회사가 있고  오세아니아주의 나라들과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도 협약 체결을 위해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다. 이외에도 『Indigo』는 독일의 막스베버 연구소, 프랑크푸르트대 인문과학 연구소와 같은 연구소를 중심으로도 세계 각국에 배포될 예정이다. 박용준 편집장은 “‘테스트 리뷰’와 같은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번 달 말 정도에 최종 배포 부수가 확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계간지 창간을 지켜보며 편집인 학생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박대현 문학비평가는 “대학생들의 직접 발로 뛰는 열의가 자본이 탄탄한 출판사도 해내지 못한 큰 성과를 이뤘다”고 의의를 설명한다. 지난 4년간 프로젝트를 위해 편집진이 직접 세계 석학들과 두터운 신뢰를 쌓아 온 것이 경쟁력 있는 양질의 계간지 발간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문학 연구의 주변부라 인식되는 한국에서 세계 석학들의 소통의 장이 탄생한 것에 대해 그는 “한국 인문학자들이 세계에 진출하는 동기를 부여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Indigo』의 창간이 인문학의 위기 타개에 도움을 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인디고 서원의 초기 인문학 운동에 관심을 기울여온 조국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Indigo』 창간은 섣부르게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시킬 사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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