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5호 5월 17일자 4면“관악구 독거노인 거주지역을 찾다­­­­” 기사를 읽고

사람들은 다수결의 원칙이 전체를 대변하고 전반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다수가 사회의 전부를 대변하기에 관심은 소수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것이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다수의 관심을 다수의 반대 위치에 서 있는 집단인 소수에게 돌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사에서 살펴본 독거노인의 실태 또한 그렇다. 정부는 그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주지 않으며 그들에 대한 관심 또한 일부에 불과하다. 독거노인의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 근원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문제와 인간적 외로움에 관한 문제이다.

독거노인은 크게 두 부류이다. 첫째는 경제적인 여건은 되지만 홀로 외로이 생활하는 분들이고 두 번째는 경제적으로도 위태로우며 외로움의 극복 또한 절실한 분들이다. 전자는 후자보다 문제의 해결이 쉬워 보이나 두 부류 모두의 문제해결은 어렵다. 우선 첫 번째 부류는 다양한 사교 커뮤니티의 활성화나 자원 봉사자의 방문 등으로 외로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두 번째의 경우 기사처럼 자원봉사자들의 활동 아래 도시락이나 생필품 등 다양한 물자조달이나 방문을 통한 외로움의 해소가 해결책이 된다.

그러나 자원봉사 수준의 경제적 지원은 근본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은 경제적 문제의 해결은 정부의 정책 몫으로 남겨두고 외로움 극복 문제에 주력한다. 이 경우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이 두 번째 부류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첫 번째 부류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미해진다. 두 번째 부류의 문제해결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경제적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첫 번째 부류에게 돌아가는 적은 지원만으로 외로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발생한다.

기사에서도 특별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사용된 문구인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 어쩌면 가장 정확한 해결책일지 모른다. 관심은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줄 수 있다. 관심은 자금적인 후원이나 자원봉사의 형태로 이어져 독거노인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와 같은 대학생은 경제적 문제 해결보다는 자원봉사를 통한 만남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노력이 모이고 관심이 커지면 분명히 더 많은 경제적인 지원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이러한 소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구희
지구환경과학부·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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