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장터에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들로 구경꾼을 즐겁게 해주는 예술가들이 있다. 작업실에 틀어 박혀 작품에 몰두하기보다 장터에서 일상과의 소통을 꾀하는 그들은 특색 있는 작품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생명력 넘치는 그들의 작품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매력적일지 궁금하다. 뜨거운 햇살이 장터의 열기를 더했던 주말, 홍대 예술장터 ‘희망시장’에서 개성 있는 작가 3인을 만나보았다.

“예술가라기보다는 방랑자죠”
수공예 액세서리 예술가 ‘de la luna limon’

사진: 서진수 기자

푸슬푸슬 레게머리에 전형적인 히피스타일의 복장부터 눈에 띄었다. 아마존에서 직접 가져온 씨앗으로 만든 반지, 안데스 원석을 가공해 만든 목걸이 등 이국적인 액세서리들이 펼쳐진 좌판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걸어봤다.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함께 일하고 있다는 그의 작가명은 ‘de la luna limon(데 라 루나 리몬)’. 스페인어로 ‘레몬달에서’라는 의미라고 한다. 예술장터에서 그의 경력은 2달의 풋내기 판매자이지만, 알고 보면 3년 동안 액세서리를 팔면서 그 돈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지금 한국에 있는 것도 여행 중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라는 그는 “외국에서는 바닷가나 축제가 벌어지는 거리를 찾아 좌판을 벌여놓고 액세서리를 팔았어요. 사람들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이 멋있다고들 하지만 뭐 거의 거지죠, 거지”라며 웃었다. 그런 그가 색색의 씨앗이 들어 있는 상자를 보여주며 “예쁘죠?”라고 자랑스레 물었다. “오랫동안 남미여행을 하면서 모은 씨앗과 원석으로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어요. 플라스틱이 아닌 실제 자연의 물질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움과 생명력 있는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어요”

그는 일을 하면서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는 삶이 가장 이상적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예술장터에서의 활동은 그런 그의 이상을 실현시켜준다는 점에서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저는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게 작품을 만들고, 이것을 사는 사람들은 그 창의성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거죠. 작품을 두고 아무런 간섭이나 억압 없이 단지 저와 제 작품을 사는 사람만이 있다는, 상업성을 벗어난 그 순수하고 인간적인 관계가 저에겐 매우 소중해요.”

예술가다운 포부라는 말에 “예술가라기보단 방랑자죠.”라고 답하며 활짝 웃는 그. 편안한 삶에 안주하고 싶은 욕망에도 주류 문화의 강렬함에도 휩쓸리지 않는 그 꿋꿋함에 감탄하며 붉은 씨앗으로 만든 하얀 반지를 구매했다. 레몬달의 생명력이 깃들기를 바라며.

“자신만의 색을 유지하는 꿋꿋함을 가져야죠”
 고양이모자 예술가 ‘빨강 고양이’


장터가 익숙한 듯 이웃 좌판 주인과의 담소를 즐기는 여유로운 그의 모습에 끌려 말을 걸었다. ‘빨강 고양이’라는 작가명으로 활동 중인 그는 모자 양쪽에 뾰족 솟은 귀여운 귀가 특징인 고양이 모자를 팔고 있다. “고양이 모자는 한땀한땀 제가 직접 뜬 뜨개질 작품인데 크기랑 색이 다양해요. 직접 손으로 뜨지만 신생아부터 성인 머리 크기까지 다 갖추고 있죠.”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희망시장에 터를 잡을 수 있었냐는 물음에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 것을 강조한다. 많은 단골손님을 얻으려면 판매하기 좋은 자리를 확보하거나 잘 팔리는 시간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홍대 예술장터에는 대개 단골들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기 때문에 재미나고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로 한눈에 사로잡아야 하면서도 그들이 다시 찾게끔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하지만 그의 고양이 모자가 인기를 끌면서 한때는 표절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질 낮은 털실로 아주 흡사하게 만든 중국제품이 명동, 이대, 동대문에 쫙 깔렸던 것이다. “그때 제 모자가 다른 좌판 앞에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울었어요. 마치 제 몸을 빼앗긴 것처럼 슬프더라고요. 이리저리 알아도 보고 변리사도 구해봤지만 결국 신경 쓰지 않고 꿋꿋이 제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했어요. 단골들이 그것은 제 작품이 아닌 걸 알아준다는 점이 큰 힘이 됐죠”

홍대 앞 놀이터에서 열리는 예술장터를 말 그대로 놀이터 가듯 간다는 그는 그날도 동료 작가들과 사다리게임을 즐기며 웃고 있었다. 그에겐 ‘하나의 놀이’라는 그의 장터 활동은 그래서 활기차고 즐거운가 보다.

“예술장터? 저와 제 작품이 같이 성장하는 공간이죠”
티셔츠 리폼 예술가 ‘싱거’

그늘진 나무 아래로 다가가니 고개를 숙이고 흰 티셔츠에 열심히 꽃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그의 작가명은 ‘싱거’다. 작가명이 ‘싱거’라는라는 말에 ‘신걸우요?’, ‘신거요?’라고 몇 번이나 물었을 만큼 특이하다. ‘애가 워낙 싱거워서’ 지은 이름이란다.

하지만 장난스러운 작가명과는 달리 그의 작품에는 전문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의 작품은 물에 지워지지 않는 특수 물감으로 꽃, 캐릭터, 풍경 등의 그림을 그린 티셔츠다. 현장에서 직접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의 좌판 앞에는 항상 구경꾼들로 가득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티셔츠를 작업실에서 리폼해서 장터로 갖고 왔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직접 그린 거라고는 잘 믿지 않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현장에서 바로 그려서 팔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그림 그리는 과정을 보여주니까 다들 신기해하고  관심도 더 보이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부터 희망시장에 참가했다는 그는 홍대 ‘희망시장’과 더불어 ‘프리마켓’이나 동대문 ‘인디마켓’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예술장터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예술장터가 ‘소통’의 장소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여기서 작업하다 보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장터를 찾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하고 다른 작가분과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이전의 것보다 더 나은 작품이 완성되곤 하죠. 분명 6년 전의 저에 비해 지금의 저 자신이 한층 성장했음을 느껴요.”

예술장터를 통해서 소통과 성장을 꿈꾸는 그. 그래서 그는 오늘도 장터 한복판에서 티셔츠 위에 꽃을 덧그린다. 더 멋지게 성장할 내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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