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사] 목포대 '섬의 인문학 연구단' 출범

섬의 역사와 문화 연구하는 ‘섬의 인문학’, 내륙지향적 인문학의 대안 될 수 있어

“사사로이 바다로 나가 외국과 무역하는 자는 곤장 100대” 오늘날 해양강국을 자랑하는 한국. 그러나 6백여년 전만 해도 외국과 바다에서 교역하는 것을 금한 ‘해금(海禁) 정책’이 한반도 바닷길을 막아놓았다. 이 정책으로 주민들이 모두 육지로 이주해 연안 도서(島嶼)지역은 오랫동안 유배지로 남았다. 오는 25일(화) 출범식을 갖는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의 ‘인문 한국(HK) 섬의 인문학 연구단’은 이처럼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먼발치서 바라만 보던 섬의 정체성과 문화를 연구하는 단체다.


‘섬의 인문학’ 전도사, 도서문화연구원

1983년 설립된 도서문화연구원은 국내에서 ‘섬의 인문학’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민속학, 인류학, 생태학, 건축학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연구원의 일원이다. 국내 최다인 2000여개(68%)의 섬이 인접한 남도지역을 중심으로 섬의 역사와 문화 연구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굴하고 체계적인 섬 개발사업과 해양문화사업을 제안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

도서문화연구원은 그간 꾸준히 「도서문화」 등의 학술지와 학술 총서를 발간해 연구 결과물로 내놓았다. 2008년에 제작된 13부작 애니메이션 「꼬치의 해양영웅탐험」은 연구 결과를 문화콘텐츠로 승화시킨 사례로 주목받았다. 애니메이션에는 도서문화연구원이 발굴한 ‘뽕할머니’, ‘개양할미’ 전설 등이 등장한다. 또 도서문화연구원은 지난해 전남 신안군 다도해 지역의 생태 및 문화 연구를 주도해 이 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선정되도록 기여했다.


섬사람들의 삶과 문화 연구로 문화·역사적 공간으로서 섬을 재조명

이름부터 생소한 ‘섬의 인문학’은 섬사람들의 삶과 살림의 문화를 연구하는 인문학이다. 강강술래의 원형은 남녀가 한데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이지만 유교적 관념이 만연한 내륙에서는 음사(淫事)로 간주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비금도와 도초도에는 아직도 그 원형이 남아있다. 진도의 신정마을에 남아있는 초분장(草墳葬)은 짚으로 된 무덤에 시신을 모신 뒤 이장하는 풍습으로 역시 내륙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도서문화연구원 강봉룡 원장은 “섬에는 내륙과 달리 유교 영향을 받지 않은 전통문화의 원형이 살아있다”고 말한다.

섬의 인문학의 의의는 내륙과 구별되는 섬의 독특함에 있다. 바다와 내륙 사이에 자리한다는 태생적 특성 때문에 섬에는 고립과 소통이라는 모순된 속성이 공존한다. 그간 섬은 육지로부터의 고립과 소외라는 배타적 이미지에 가렸지만 최근 바다와 육지를 잇는 가교이자 소통의 공간으로 부상했다.

소통의 가치를 지향하는 섬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설 대안으로 제시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성장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성에 대한 반성을 담은 진단인 것처럼 섬의 인문학도 내륙에 의해 끊임없이 타자화된 섬의 가치가 부각돼 대안 인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도서문화연구원 측은 “섬의 자연·문화경관을 통해 성장 지상주의와 내륙 지향적 인문학에 대응하는 대안 인문학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경엽 부원장도 “그간 내륙 중심적 연구에서 소외된 섬을 문화·역사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그 속에 깃든 다양한 인문학적 가치와 유산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방과 자유의 가치가 확산된 21세기에 섬의 인문학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연안 및 해양 지역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육지의 공간 인식이 도서 해양 지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특성상 섬의 인문학은 새로운 국토이용 전략 수립이라는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진정한 섬연구의 가치를 모색하며 종합적 도서·해양 정책 연구를 지향

바다를 접한 이웃 나라에서는 섬의 중요성에 일찍부터 주목해 이미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도서문화연구원과 교류하는 일본의 ‘이도(離島) 센터’는 정부가 국가연구센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국토 자체가 섬인 일본은 도서 지역 관리를 오래전부터 중시하면서 자연과학을 포함한 관련 분야 연구가 종합적으로 발달했다. 중국 연안지역의 여러 해양대학에서도 섬 지역을 포괄하는 해양 문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한국도 섬을 연구하는 또다른 기관으로 독도연구소가 설립됐지만 진정한 의미의 섬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강봉룡 원장은 “독도 영토 분쟁이 시급한 외교 현안이다 보니 연구가 섬이라는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독도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서문화연구원은 종합적 해양 정책 연구를 지향하며 독도연구소와 차별성을 두고 있다. 섬과 바다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듯 도서정책과 해양정책 연구도 한 묶음이다. 강봉룡 원장은 “앞으로도 도서와 해양지역 전반을 아우르며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의 현안이 되는 문제가 있다면 연구할 계획”이라 밝혔다.

한국 정부도 늦게나마 섬 연구의 가치를 깨닫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미 1999년부터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의해 중점연구원으로 지정된 도서문화연구원은 지난해 인문한국지원사업단으로 선정됐다. ‘섬의 인문학: 문명사적 공간인식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연구주제로 문학, 역사, 종교, 생태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는 물론 성과물을 문화콘텐츠와 섬의 지속가능한 개발 정책으로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국제 학술지 『SEOM(섬)』(가칭)의 발간, 해외 인적 교류를 위한 전문대학원 과정 개설 등의 구체적 사업도 계획돼 있다.
일찍이 육지와 떨어진 섬은 두려움과 배척의 대상이었지만 그 덕에 오늘날 가장 지역색과 글로벌 감각을 두루 갖춘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첫발을 내딛는 도서문화연구원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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