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연구소 워크숍] 전후 일본의 생활 세계와 동아시아

일본의 동아시아 인식 연구로 일본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 깊어져

지난 19일(수)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연구소 주최로 ‘전후 일본의 생활세계와 동아시아’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은 인문한국지원사업(HK)으로 구성된 기획연구팀이 지난 12월부터 진행해온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기존의 전통적 지역연구는 19~20세기 강대국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편향적으로 이용됐다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이번 워크숍은 일본 지식인 사회와 사회운동·문화현상에 나타난 동아시아 인식을 통해 일본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연구의 총책임을 맡은 남기정 교수(일본연구소)는 “일본 사회에서 타자로 여겨지는 동아시아 인식을 바탕으로 일본과 동아시아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1부에서는 각각 일본의 진보적·보수적 지식인의 동아시아 인식을 다룬 두 논문이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진보 지식인들은 아시아 평화를 논의하는 평화문제담화회를 꾸려 ‘전후 평화주의’를 일본 국가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전후 평화주의’가 일본이 식민지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회피하는 방패막으로 작용하면서 일본 지식인 사회에는 평화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과 명확한 아시아 인식이 부재했다. 발표자 남기정 교수는 “식민지에 대한 반성이 부재한 ‘전후 평화주의’가 80년대 말 유토피아적 평화주의라 비판받으며 한계에 봉착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정진성 교수(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는 정책 수립을 주도한 일본 내 보수적 지식인들의 아시아 인식을 담은 잡지 『아시아문제』를 분석했다. 보수 지식인들도 ‘전후 평화주의’ 맥락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원만한 외교관계를 추구하는 등 진보 지식인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진성 교수는 “『아시아문제』의 편집진들은 일본이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자각과 함께 동아시아에 퍼진 ‘아시아 내셔널리즘’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우려를 표했다”고 말했다.

2부에서는 1948년 일본 공산당에 의해 일어난 진보적 사회운동인 ‘우타고에(歌声) 운동’ 연구가 눈길을 끌었다. 우타고에 운동을 이끈 공산주의 운동가들은 소련·중국의 공산주의 운동가들과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타고에 운동은 1950년대 일본 공산당이 노동세력의 정치투쟁과 연계하면서 노동가, 혁명가, 소비에트가곡 등 다양한 레퍼토리의 음악을 대중 속에 퍼뜨린 음악운동이었다. 이지선 교수(숙명여대 일본학과)는 소련과 중국, 일본 공산당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우타고에 운동을 바라보고, 이들 공산권 국가들과 일본의 관계를 통해 ‘전후’ 일본의 동아시아 인식을 도출해 내고자 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일본의 문화현상 속 동아시아 인식에 주목한 발표가 진행됐다. 그 중 다양한 주제의 토론장이 형성된 일본 인기 인터넷 사이트인 ‘2ch’을 분석한 연구가 참석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2ch’은 지난겨울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반환 요구 사건을 통해 한국 내에서 ‘혐한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 ‘2ch’과 같은 ‘네트우익’은 아시아 국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언론활동을 펼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반일감정’ 유무라는 잣대만으로 주변 아시아 국가들을 유동적으로 평가한다. 이는 식민지 지배 경험에서 우러나온 혐한·혐중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은 기성우익과 다르다.

기성우익과 네트우익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대만’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 변화다. 기성우익 세력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대만에 반(反)감을 가진다. 그러나 네트우익은 대만이 친일 성향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대만에 우호적이다. 김효진 HK연구교수(일본연구소)는 이 같은 네트우익과 기성우익의 차이점을 지적하며 “기존 우익과 달리 지극히 주관적이고 유동적인 성향을 띄는 네트우익 세력은 명확한 실체가 있다고 단정짓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강태웅 교수(광운대 일본학과)는 “한·중·일 삼국의 관계는 정치·경제적으로 점점 긴밀해지고 있지만 오히려 네티즌들 사이에는 내셔널리즘이 강해지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와 함께 성장한 네트우익도 기성우익의 연장선상에 포함된다”고 평가했다.

이번 워크숍은 일본 지식인과 사회운동, 문화현상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일본의 동아시아 인식을 연구한 성과물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엮어낼지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남기정 교수는 “이 워크숍은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된 연구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해 연구의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일본의 ‘전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학자들의 고민도 더욱 깊어졌다. 토론자로 참석한 전경수 교수(인류학과)는 “‘전후’를 인식할 때는 ‘전전’과의 단절뿐 아니라 연속성도 포괄하는 통합적인 시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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