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농생대 향록연극회 「초꼬슴」

사진: 최창문 기자  ccm90@snu.kr

기존의 수동 작업현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의 도입이 가져온 공장의 자동화 및 단순노동 현장으로의 변모는 1930년대 산업현장의 초상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은 수요가 대량공급을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대공황과 단순노동에서 비롯된 피로였다. 이런 풍조를 두고 찰리 채플린은 영화 「모던 타임즈」(1936)를 통해 인간조차 기계화되는 세태와 ‘포드주의’를 비꼬아 지친 당대인의 감성을 위로했다.

지난 17일(월) 농생대 향록연극회는 소통의 단절, 교육자의 이중성, 임신과 낙태 등 현대의 다양한 문제를 두고 제2의 찰리 채플린을 자처했다. 극은 총 4개의 막을 엮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됐다. 막이 오르고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것은 이별을 앞둔 어느 연인이다. 말이 없는 두 남녀는 어색한 공백을 깨보려 대화를 시도하지만 계속되는 다툼에 그들은 더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에 남자는 더 이상의 논쟁이 지겹다는 듯 “지쳤다”며 한숨을 쉬고 여자는 질세라 “미안해, 나 원래 그런 여자야”라고 대꾸한다.

이 두 남녀가 서로에게 내뱉은 무관심한 언어에 상처 입고 등지는 것처럼 극은 계속해서 일상 속에 ‘원래 그런’듯 내재한 곪디 곪은 고름들을 속속히 터뜨린다. 2막과 3막에는 각각 18년 만에 모교에 찾아와 다짜고짜 수업료를 돌려달라는 사내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가짜 임산부’의 얘기를 다룬다. 2막에서 사내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결국 사회에서 실직자가 됐다고 토로한다. 그러자 교사들은 그의 실력을 검증한다며 사내에게 ‘30년 동안 전쟁을 치른 나라는 몇 년 동안 전쟁을 했는가’ 따위의 시험문제를 낸다. 사내는 ‘7m’라는 오답을 내놓지만 교사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은 공간개념으로 환산 가능하다’는 등의 엉터리 근거로 사내의 답을 합리화하며 교과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3막에서는 산부인과에서 조용히 앉아 부른 배를 정성껏 쓰다듬던 임산부가 원치 않게 임신한 어느 여고생의 “X같다”는 말에 느닷없이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른다. 그리고 그녀는 뱃속에서 베개를 꺼내 관객을 향해 내던진다.

극의 마지막에서 사내는 교사에게 “내가 이런 날강도들한테 교육을 받았다니. 선생이 아니라 정치가가 됐으면 부정으로 치부하고 거스름까지 받겠다”는 빈정 섞인 말을 던지고 임산부는 “네가 아이 못 갖는 내 심정을 아느냐”며 울부짖는다. 이러한 극을 통해 관객은 무관심이 뿌리내린 사회의 부조리함과 그 속에서 각자가 짊어질 상처, 그리고 그 최후를 하나하나 지켜볼 의무를 짊어진다.

내팽개쳐진 인물들의 최후를 조명한 연극에 향록연극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일을 하는데 맨 처음’을 의미하는 ‘초꼬슴’이란 단어를 내세웠다. 그 이유는 4막에서 짐작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무관심한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채 각자의 공간에 갇힌 인물들의 갈등을 4막의 라디오 DJ가 차분한 목소리로 어루만진다. “혹시 당신은 당신을 당신의 방에서 구해줄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DJ의 말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당신이 당신을 구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곧 방에 갇힌 당신을 구할 사람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혹시 당신은 타인을 타인의 방에서 구해줄 그 누군가가 아닐까? 도움을 기다릴지 아니면 갈등의 끝에서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먼저 구하러 갈지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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