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서평]『신의 용광로』

신의 용광로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지음┃이종인 옮김┃
책과함께┃672쪽┃
3만3천원
하나의 지역에 불과한 유럽의 역사를 세계사의 보편적 과정으로 간주하고 유럽에 세계사의 주체 위치를 부여해 온 유럽중심주의는 지금까지도 서구는 물론 비서구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뉴욕대 역사학과 석좌교수인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는 이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이 은폐하거나 삭제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다시 역사의 무대에 올려놓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19세기 말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러난 프랑스의 인종주의적 반유대주의를 다룬 『명예의 죄수들』, 같은 시기 아프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려 한 영국 제국주의와 그에 맞선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간의 충돌을 다룬 『파쇼다를 향한 경주』, 그리고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범아프리카주의 이론가이자 흑인 인권 운동의 선구자인 W. E. 두 보이스의 전기 등은 그의 작업을 대표하는 저작들이다. 그중에서도 주로 근대사에 천착해 온 그가 570년부터 1215년까지 중세 유럽의 역사를 다룬 『신의 용광로』는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주류적인 유럽 중세사는 글자 그대로 ‘유럽인들의’ 역사였다. 그러나 루이스는 유럽의 중세사는 유럽인들만의 역사가 아니라 유럽인들과 비유럽인들(특히 아랍의 무슬림들)이 함께 만들어 낸 역사였고, 중세 유럽이라는 공간은 유럽의 기독교도들과 비유럽의 이슬람교도들이 각축했던 역사의 무대였다고 주장한다. 또 당시 이슬람교는 유럽의 기독교에 비해 더 관용적이었고, 이슬람 사회는 더 평등하고 다원적이었으며, 무슬림의 학문 및 기술과 예술도 유럽인보다 앞서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선진적인 문화를 갖고 있던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국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역에 자리 잡은 이후, 이슬람 문명은 프랑크 왕국을 비롯한 유럽의 기독교 왕국들과 경합하면서도 기독교는 물론 유대교 등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용광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유럽중심적인 주류 역사학에서는 732년 푸아티에의 전투에서 프랑크 왕국의 칼 마르텔이 알-안달루스의 총독인 알-가피키가 이끄는 무슬림 지하드(jihad)를 막아 낸 후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 묶어 버렸고, 그에 따라 유럽을 이슬람화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유럽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했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루이스는 『신의 용광로』 서문에서 만일 그 전투에서 이슬람이 승리했다면, 그래서 유럽이 이슬람 세계 제국에 편입됐다면, 유럽인들은 13세기에 가서야 도달할 수 있었던 경제적, 과학적, 문화적 수준을 3세기나 앞당길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다른 해석을 내린다.

이렇듯 루이스는 ‘후진적인’ 유럽의 기독교 문화와 ‘선진적인’ 아랍의 이슬람 문화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기존의 유럽 중세사를 수정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분명 우리로 하여금 중세 유럽사에 관한 일방적 통념에서 벗어나게 해줌과 동시에 이슬람의 문화적 전통에 대해서도 재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루이스의 작업 이전에도 이미 유럽중심적인 역사를 전면적으로 비판해 온 중요한 저작들이 출간된 바 있다. 유럽의 고전 고대 문명의 뿌리가 사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었음을  논증한 마틴 버낼의 『블랙 아테나』(1987)라든가, 유럽의 세계 지배는 1800년 이후 지금까지 고작 200년에 불과하며 그 이전까지는 유럽보다 앞선 기술과 제도를 갖고 있던 아시아가 세계 경제를 오랫동안 지배해왔다고 주장한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1998)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이 저작들에서와 같이 과거에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유럽 못지않은 문명 수준과 경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으로 현재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작동하는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와 유럽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지적 지배에 맞설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저작들은 과거에 유럽보다 우월했던 비유럽이 어째서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에 종속됐는가 하는 문제를 곤혹스럽게 제기해 줄 뿐이다. 루이스는 『신의 용광로』에서 빈번하게 가정법을 사용해 과거의 현실을 뒤집어 보려 하지만, 저 먼 옛날의 역사를 다르게 가정한다고 해서 오늘의 역사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유래하는 근대 역사학 자체와 유럽의 식민 지배 효과로 비유럽인들에 내면화된 근대적인 역사인식 자체를 문제화하지 않은 채, 유럽에 쏠려 있던 역사의 비중은 감손시키고 비유럽의 비중은 증대시킨다거나 유럽을 주체로 설정해 온 역사과정에 다른 가상적 주체를 세우는 방식으로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현재의 유럽중심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저 유럽중심주의의 현존하는 주체 범주인 ‘유럽’을 어떠한 지평에서 사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유럽중심주의 담론에서 ‘유럽’은 단지 지리적이거나 지정학적인 공간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그것은 ‘근대=자본의 지배’를 상징하는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인식론적 기호이다. 따라서 유럽중심주의의 극복은 그 같은 기호의 보편적 작동 외부에서 근대 이후를 전망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것은 유럽과 비유럽의 역사를 근대와 자본의 인격화된 주체인 부르주아 엘리트들의 연대기나 자서전으로 구성해 온 담론을 비판하는 데에서, 요컨대 역사학에서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루이스의 『신의 용광로』는 이슬람 문명을 중세 유럽의 무대에 올려놓긴 했어도, 기독교 진영의 샤를마뉴라든가 이슬람 진영의 아브드 알 라흐만 1세와 같은 지배 엘리트들의 자서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는 이 엘리트들이 유럽 지역에서 벌이는 수많은 전쟁에 수반된 폐해들을 지적하고는 있지만, 전쟁 자체를 주로 두 종교의 엘리트들이 구현하는 문명 간의 충돌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 그 전쟁에서 기독교 사회나 이슬람 사회의 이름 없는 민중들은 엘리트들의 문명 투쟁에 동원된 전쟁기계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루이스의 『신의 용광로』는 중세 엘리트들에게서 지배적 위치를 이어받게 될 근대 유럽 엘리트들의 우여곡절 많은 전사(前史)로도 읽힐 수 있다.
김택현 교수
성균관대 사학과
『역사란 무엇인가』(2007, 까치글방)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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