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연 교수
외교학과
오랜 타지생활로 말이 늦어진 아이가 겨우 단어를 익힐 무렵, 그림책의 식물·동물·광물 분류를 보면서 “우리 인간도 동물(animal)에 속해”라고 일러주니 “아니에요, 우리는 포유류(mammal)에요”라고 답해 내 아이가 에디슨 과에 속한다고 감격한 적이 있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스위스는 북으로 독일, 동으로 오스트리아와 리히텐슈타인, 서로 프랑스, 그리고 남으로는 이탈리아와 접경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성 때문에 여행객에게는 매력적인 관광 대상국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정학적 접근성으로 인해 아픈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비관세동맹에 가입했으면서도 정치·군사적 동맹에는 불참을 선언한 중립국이다.

스위스의 지정학적 다양성은 정치 및 사회적 구성의 다양성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에 인문사회과학도에게는 매력적인 관찰 대상국이다. 우선 행정조직은 다양한 크기의 하위정부단위체인 총 26개 캔톤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17개가 독일어권, 4개가 프랑스어권, 1개가 이탈리아어권, 3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공용하는 이중 언어권, 그리고 1개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고대 로망어군을 공용하는 삼중 언어권이다. 전국적으로는 독일어(63%), 프랑스어(20%), 이탈리아어(6.5%), 그리고 고대 로망어군(0.5%)이 각기 통용된다. 또한 가톨릭(42%), 신교(35%), 정교(2%), 회교(4%), 유대교(0.2%)가 병존한다. 게다가 전체인구의 20%가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스위스는 행정조직, 언어, 종교, 그리고 인구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더구나 다양한 사회구성은 다양한 공동사회적(communal) 문화, 즉 다문화주의를 동반한다. 그러나 동시에 스위스라는 국가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통일성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스위스는 어떻게 다양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성취해 ‘(정치적) 의지에 의한 국가(Willensnation)’가 되었는가.

스위스 헌법전문에는 “스위스 국민과 캔톤은…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실천하며 살기”를 다짐하는 결의가 담겨 있다. 연방주의를 통치원칙으로 채택한 스위스는 주권재민의 원칙과 더불어 캔톤을 주권의 실제 소재지로 동시에 천명하고 있다. 이 자체도 연방주의를 연구하는 학도에게는 흥미진진한데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실천하자는 결의를 담은 헌법전문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더구나 대의민주주의가 판치는 현대에서 직접민주주의의 통치기제가 통용된다니 전율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이 정치적 의지로 가능한 통합의 범례라는 칭송을 듣는 스위스에서도 얼마 전 국민발의로 회교 첨탑의 신축금지법이 통과되었다. 스위스라는 국가가 존립하는 근간인 통일성이 이질적 종교와 종교공동체까지 허용하라는 ‘다양성’ 요구로 침해당하고 있다는 정치적 모략을 대다수 국민이 수용한 결과이다.

민주주의의 이상형인 스위스마저도 뿌리치지 못하는 현혹의 손길을 목격하니 앞서 전율이 오한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권리행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각오를 다짐한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정치적 포유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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