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주문을 깨다

주문을 깨다

대니얼 데닛 지음│김한영 옮김│동녘사이언스│560쪽│2만2천원
다윈의 『종의 기원』이 진화론을 주창하며 창조론 중심 세계관에 반향을 일으킨 지 150여년이 흘렀지만 진화론은 여전히 과학계와 종교계를 뜨겁게 달구는 주제다. 그동안 자연과학에서 탄생한 ‘진화’라는 용어는 학제적 연구가 빈번해진 오늘날, 인간의 문화체계까지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14일(금) 출간된 『주문을 깨다』는 문화체계인 종교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생물철학자인 저자 대니얼 데닛은 전작 『다윈의 위험한 생각』에서 형이상학에 치우치지 않고 신경과학의 관점까지 포괄해 인간의 의식과 사회·문화 현상을 설명한 바 있다. 이번 저서에서 저자는 생물학적 유전자 개념을 바탕으로 종교 현상을 분석하며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가 종교 현상의 주된 분석 도구로 사용한 유전자의 ‘지향적 자세’는 인간의 유전자가 특정한 행위를 지향한다는 개념이다. 인간이 스스로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행동도 사실은 의식치 못한 유전자의 자연법칙에 의한 결과다. 원시 종교에서 유전자의 지향적 자세의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신비로운 사물을 숭배하는 행동의 밑바탕에는 시련에 직면했을 때 경외하는 숭배물에 의지하려는 유전자의 안정 지향적 자세가 자리 잡고 있다.

종교의 진화 과정도 유전자의 ‘지향적 자세’의 산물이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도 그 배후에 있는 행위자를  반드시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은 애니미즘과 조상 숭배 등 민속 종교를 낳았고, 사회가 복잡해지고 구성원 간 협동의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집단화된 종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경전과 수많은 신도를 보유한 현대 사회의 거대 종교 집단은 선험적 진리에 의해 형성되고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지향적 자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종교가 진화함에 따라 인간이 종교가 거는 ‘주문’에 홀리게 됐다고 지적한다. 종교를 통해 얻은 안정감은 종교에서 벗어났을 경우 엄습하는 불안감과 공포로 돌아온다. 종교의 부재를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인간은 종교적 믿음 자체를 신성시하게 됐으며, 종교에 대해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를 종교가 인간에게 거는 ‘주문’이라고 표현하며, 이 ‘주문’을 방패 삼아 교리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종교계의 현실에 일침을 가한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속한 것처럼 보였던 종교 현상이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에 지배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애초에 ‘주문’을 깨뜨리려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초 자연적 신을 숭배하며 경건한 종교 생활을 영위하는 많은 이에게 종교가 생물학적 법칙에 따라 진화한 산물이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다분히 도발적이다. 기성 종교의 위협을 무릅쓰고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려 노력한 저자의 목소리는 비판적 용기로 넘친다. 그러나 단순히 저자의 주장을 도발적 메시지로만 여기지 말고 그 메시지에 담긴 철학적 관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초 자연적 존재인 신에 의존하지 않고 도덕성과 숭고함을 실천하는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저자의 기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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