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정책진단]

올해 한국은 유네스코 가입 60주년을 맞았다. 한국은 1950년 유네스코 회원국이 된 이래로 종묘, 수원화성,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등 20여 개의 문화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08년 2월 숭례문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과 정부의 프랑스에 대한 외규장각 영구임대 추진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며 정부의 문화재 관련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이에 정부와 문화재청의 문화재 관련 정책들을 살펴보고 문화재 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소홀한 관리 속 사라져 가는 문화재

문화유산의 보존과 가치창출을 위해 설립된 문화재청은 최근 그 설립목적을 저버리는 정책들로 각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문화재청이 안이한 관리 시스템과 정책으로 일관하며 문화재들을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문화재 화재 예방 대책’을 수립해 소방시설을 재구축하겠다고 밝히며 4대 궁과 종묘의 안전시스템에 86억7천만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지난 24일(월) 감사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까지도 이 종합경비시스템은 완비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발견 당시 제2의 안압지라며 주목을 받았던 경주시 용강동에 위치한 사적 제419호 원지(苑址)는 10년 넘게  폐타이어와 폐비닐 속에 방치돼 있으며 지난 1월 소방시설 설치공사 중 찢겨진 등록문화재 240호 궁중벽화 총석정절경도 역시 복원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회 문화재관리제도개혁특별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은 “문화재청의 안이한 문화재 관리 정책은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진행하는 개발 정책 역시 문화재의 보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종로구 익선동 전통한옥 밀집지역에 면적이 3만3천여제곱미터에 달하는 숙박시설 설립이 추진된 바 있다. 또 지난 12일(수)에는 서울시 산하의 SH공사가 제출한 ‘사적 제125호 종묘 앞 55m 높이 건물 설립안’이 문화재 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 종묘의 유네스코 등재 취소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육의전 터를 지하 1층에 원형대로 보존하고 그 위에 건물을 설계한 육의전 빌딩의 예처럼 문화재를 보존하면서도 개발을 추진하는 방법이 있다”며 “현재 문화재청은 문화재를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 없이 무분별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문화재 역사의 뒤안길로

문화재보호법에 지정되지 않은 개인 소유 문화재, 국외 소재 문화재들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비지정문화재는 훼손 가능성이 크고 도난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도 문화재청을 비롯한 유관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지차체)들이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권응수 의병장을 배향했던 귀천서원은 기와가 무너져 내리고 현판을 도둑맞았지만 비지정문화재란 이유로 어느 부처도 이를 관리하지 않고 있다. 울산시 동구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도 비바람을 막는 전각이 소실돼 훼손 정도가 심각하며 입상 앞에 무속인들이 시멘트로 만든 제단을 세우고 있는데도 이를 제지하는 곳이 없다. 이에 대해 성정용 교수(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는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의식 없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문화재를 바라보는 이들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외에 있는 문화재 7만4천여점의 환수문제 역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약탈 문화재의 환수 요구는 대부분 시민단체의 몫일 뿐이다. 실제로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조선왕실의궤,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한 라마탑형사리함 등에 대한 반환 요구도 시민단체에 의해 건의됐다. 그러나 정부는 외교적 마찰을 이유로 문화재 반환에 힘쓰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시민단체의 외규장각 반환소송 항소심이 진행되는 가운데 프랑스 정부와 외규장각을 영구대여 형식으로 들여오겠다는 협상을 벌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의 사무총장 혜문 스님은 “도난•약탈 문화재에 대한 환수는 당연하다”며 “질곡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문화재 환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난 겪는 문화재 역사의 산실로 되살릴 방법은

문화재 관리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체계적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6월 정부는 문화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문화재보호기금을 마련해 올해 총 1천34억원을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문화재 관련 국정감사를 맡고 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송훈석 위원장은 “현재 문화재 관련 예산이 지역 유물전시관 건립처럼 ‘보여주기식 행정’에 사용되고 있다”며 “문화재의 관리와 보존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부분에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문화재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를 관리할 전문가를 양성해 전문기관에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임진왜란의 격전지인 동래읍성을 복원하고 있는 부산 동래구청의 관계자는 “정부지원이나 파견이 없어 지자체가 직접 문화재 전문가를 찾아나서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학예사, 문화재 법 전문가, 도편수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양성과 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평우 소장도 “정부와 지자체들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지원책과 체계적 정책 수립을 통해 역사의 산실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는 역사를 담아내는 사료일 뿐 아니라 동시대의 시대성과 공동체 정신을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이다. 이를 지켜나가기 위한 체계적 정책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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