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 이병률의 『끌림』, 최갑수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여로에서 마주친 낯선 이와의 대화는 때때로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우연이 남긴 흔적은 가슴 속 깊이 스며들어 여행을 마친 후에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된다. 여행 에세이 『끌림』(2010, 달)과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2010, 달)에는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들과의 추억과 설렘이 녹아있다.

2005년 처음 출간된 후 지난 7월 재출간된 이병률 시인의 여행에세이 『끌림』은 세계를 여행하며 떠오른 그의 단상과 감정을 섬세히 그려낸다. 책의 제목처럼 어떤 기준도 없이 감정이 이끄는 곳으로 흘러가는 그의 여정은 자유로운 문장들로 풀어져 나간다. 그는 여행지를 그곳의 풍광으로 기억하기보다 그곳에서 스친 낯선 이들과의 만남으로 기억한다. 더운 날씨에 쉼 없이 갈증을 느끼는 그에게 라임 띄운 물을 건네는 물장수와의 짧은 시간은 지친 그의 몸과 마음에 위안으로 기억된다. 조금이라도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출 수 없다는 탱고를 서툴게 추던 순간엔 여행지의 설렘이 기억된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길 위의 인간’으로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에세이에는 낯선 이들과의 우연한 만남과 감정의 끌림들이 묻어난다.

『끌림』이 우연한 만남이 주는 설렘의 기록이라면 오랫동안 여행 담당 기자였으며 시인이기도한  최갑수씨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는 기다림의 추억에 잠긴 채 또 다른 추억을 골목 여행자의 기록이다. 어스름한 저녁 골목의 끝자락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는가. 저자는 누군가를 정처 없이 기다리던 때의 그리움을 안은 채 골목을 여행한다.


골목을 지나는 그의 발걸음은 기다림의 무게만큼 무거우면서 기다림의 시간만큼이나 느리다. 그는 이 여정에 지칠 때쯤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골목길 어귀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사연 하나쯤을 간직하고 있을 법한 골목 모퉁이의 낡은 계단에서 골목을 지나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는 시구를 읊으며 옛 추억을 하나 둘 꺼내 드는 할아버지와 오래전 이 골목에 머물렀던 때를 회상하는 할머니에게서 골목의 옛 추억들을 전해 듣기도 한다.

두 에세이에서 여행 중에 만남은 또 다른 여행의 발길로 이어진다. 여행이 끝난 후 기억 저변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이에게 걸려온 전화.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는지를 묻는 여행지에서의 인연에 이병률씨는 앙코르와트의 붉은 햇살이 얼굴을 비추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낯선 인연을 잊지 못하는 최갑수씨 역시 또다시 골목을 서성인다. 이번 여름 낯익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가슴 뛰는 낯섦을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